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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 말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9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2코린 3,15─4,1.3-6


형제 여러분,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15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4,1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이 직분을 맡고 있으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3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 하여도 멸망할 자들에게만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4 그들의 경우, 이 세상의 신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6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복음 마태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한 번의 만남은 작은 점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점과 점이 만나서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만나서 ‘면’이 되는 것처럼 점차 넓어지는 것이 바로 사람들과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작은 점과 같은 만남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면’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한자어를 잘 살펴보십시오.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씁니다. 즉,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의 절차탁마(切磋琢磨)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이웃과 함께 하려는 계속된 노력을 통해서 작은 점이 선이 되고 면이 되면서 풍요로움을 갖게 됩니다. 이웃과 함께 희로애락을 되풀이하면서 세상 안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욕심이 이러한 성장을 막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원숭이를 잡을 때, 손만 집어넣을 수 있는 항아리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이를 넣어둔다고 하지요. 그러면 좁은 입구 안으로 손을 넣고서 안에 있는 먹이를 움켜잡으면 끝입니다. 손을 펴지 않고 꾹 움켜잡고 있기 때문에 항아리 밖으로 손을 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내 안의 욕심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굴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때로는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을 포기하는 희생을 가져야 미래가 보장됩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었는지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아주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기심과 욕심을 드러내면서 마치 자신의 뜻이 하느님의 뜻인 것처럼 말하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라는 것은 개인적인 열심은 물론이고 공동체 안에서도 열심히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형제와 화해한 뒤에 예물을 봉헌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안의 욕심과 이기심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점’과 같은 만남을 넓은 ‘면’이 될 수 있도록 사랑으로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 있는 삶이 됩니다.
내가 관계 맺는 모든 사람은 어떤 점이 되었든 나보다 우월한 부분이 있으니, 나는 그들 모두에게 배울 수 있다(랄트 왈도 에머슨).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희생으로 더 좋은 미래를 맞이한다.

술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의대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가 제일 즐거웠습니다. 그렇다면 의대생으로 의과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술 마시는 것이 중요할까요? 이 의대생은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술자리를 포기했습니다.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미래를 향한 구체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1) 모든 희생 중에 가장 크고 효과적인 희생, 즉 가장 이상적인 희생은 무엇일까?

2) 가장 큰 희생을 바쳤을 때, 미래는 얼마나 좋은 모습일까?

희생을 통해 더 좋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순간의 세속적인 만족에만 머물러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