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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 말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2019년 6월 14일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제1독서 2코린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명절 날 손님을 맞이하면서 필요한 음식 장만 및 가사 업무로 인한 자매님들의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라고 하지요. 그래서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게 명절을 치룬 뒤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던 남편이 어떻게 했을 때 스트레스가 좀 풀리게 될까요?

첫 번째 남편은 다가가서 “정말로 수고했어. 고마워.”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가가서 아내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습니다.

이렇게 언어로 아내를 격려하는 것과 신체적 접촉으로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 중에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은 신체적 접촉이 있었을 때라고 합니다. 즉, 말보다는 행동이 스트레스 감소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로만 표현하고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는 듯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자매님께서 누군가에게 큰 실수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다가가서 “정말로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면서,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이제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말로만 표현하는 사과 역시 그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어야 했습니다.

사랑의 표현이 가장 큰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말을 넘어선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주님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내 이웃을 향해 실천하는 것이 주님께서 더 좋아하시는 모습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죄를 끊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좀 너무하다 싶은 말씀을 하십니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말만 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실제로 행동으로 과감하게 끊어버릴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다시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죄를 멀리하는 단호한 우리가 될 수 있을 때, 주님께서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사랑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 주님과 함께 하는 참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말만 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 아닙니다. 말은 단순히 우리의 행동을 보충해줄 뿐입니다. 그 말에 힘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루를 보내는 방식은 당연히 평생을 보내는 방법과 같다(애니 딜러드).




성가정의 모범을 따릅시다.


누구를 먼저 구하겠습니까?

어머니, 아내(남편), 자식이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하겠습니까?

물론 이런 일이 생겨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지만 누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져 보는 것입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이 다르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제일 먼저 아내를 구하고, 그 다음으로는 자녀를, 마지막으로는 어머니를 구한다고 합니다. 아내가 있으면 자식은 얼마든지 새로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서양의 가치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양 사람들은 어머니를 제일 먼저, 그 다음은 자식을, 마지막으로 아내를 구한다고 합니다. 동양의 가치관인 효(孝)가 담겨 있는 대답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 역시 동양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제일 먼저일 것 같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자녀, 아내, 어머니의 순서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녀에게 맞춰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첫째 자리는 자신의 배우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최고로 고마운 존재는 부모이지만,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배우자이기 때문입니다.

일 순위가 되어야 할 배우자를 두 번째, 세 번째 자리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혹시 그보다도 더 뒷자리에 두고서 아니 맨 마지막 자리에 두고서 무시하고 때로는 꾸짖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것도 해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