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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22주간 월요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9월 1일 연중 22주 월요일 강론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4,13-18
13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4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16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17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지금, 여기서 선포하는 기쁜 소식

 

오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에 관해 깊이 생각하도록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부재의 상황"에 기쁨과 희망, 자유와 빛을 주려고 파견되셨습니다(루카 4,18-19).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이들을 해방하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여 빛 가운데 살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넘어 생명을 주시러 오신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자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읽고 "이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선포하십니다.

 

루카복음 사가는 "오늘"(σήμερο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하느님의 구원이 "지금",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향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 놀라운 선물을 거부합니다.

 

바리사이들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에게서 하느님의 구원이 나올 수 없다며 잔뜩 화를 내고 예수님을 배척합니다(4,25-29). 인간의 고정관념, 편견, 자기 이해관계가 기쁨과 희망과 자유의 물꼬를 틀어막는 걸림돌임을 경고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선포할 때 늘 암초를 만납니다. 그 첫째가는 가장 위험한 암초는 다름아닌 "나 자신"입니다. 나의 편견과 사고의 틀, 집착과 탐욕, 무관심과 미지근한 태도가 늘 문제입니다. 나 밖의 도전과 유혹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부활의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οἱ λοιποί) 사람들처럼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1테살 4,13)"오늘",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를 굳게 믿고, 예수님의 사명을 주저없이 살아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합니다. 부활의 희망 속에서 죽음을 새롭게 바라보며, 동시에 말씀을 ‘오늘’ 우리 삶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내일이나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편견없이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난한 이를 '늘' '먼저' 선택하여 사랑할 때, 우리는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과 지금 이루어지는 구원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비우고, 낮추고 작아지도록 깨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참된 복음 선포는 말에 있지 않고 삶의 증거에 있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 신앙으로 무장하여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라,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진정한 기쁜 소식인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나의 행동과 말,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고 삶의 의미가 될 때 복음은 선포됩니다. 바로 이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교회의 모습이자, 참된 자유를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나는 하느님 부재의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선포하고 있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