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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5일 (녹)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제1독서 <홍해에 마른땅이 나타나자 그들은 어린양들처럼 뛰었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18,14-16; 19,6-9 14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15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 16 그는 당신의 단호한 명령을 날카로운 칼처럼 차고 우뚝 서서 만물을 죽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가 땅 위에 서니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19,6 당신의 명령에 따라 온 피조물의 본성이 저마다 새롭게 형성되어 당신의 자녀들이 해를 입지 않고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7 진영 위는 구름이 덮어 주고 물이 있던 곳에서는 마른땅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으며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 8 당신 손길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온 민족이 그곳을 건너갔습니다. 9 그들은 풀을 뜯는 말들 같았습니다. 또 어린양들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주님, 자기들을 구해 내신 당신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의 매일 묵상 체험 † 찬미예수 제게는 아주 소중한 묵주 반지가 있습니다. 2018년에 어머니의 십자가 목걸이를 녹여서 만든 묵주 반지입니다. 그 반지는 단순한 묵주 반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신앙과 사랑이 녹아 있는 유품이자, 제 사제 인생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반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도 몇 번 잃어버린 적이 있었지만, 잘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제관에도, 집무실에도, 성당 구석구석을 다 뒤졌지만, 흔적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이제 정말 끝이구나’라는 체념이 들 무렵, 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날 책장 위에서 묵주 반지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다소곳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감사와 감격으로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동전’, 그리고 ‘돌아온 아들’의 비유가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은 잃어버려도 다시 찾게 하시고, 멀어져도 다시 품어 주십니다. 우리가 잃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하느님의 손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아보면 제 삶은 감사로 엮여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맡겨 주셨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는 언제나 함께할 사람을 보내 주셨습니다. 건강이 완전하지 않아도 새벽마다 눈을 뜨게 하시고, 산책하며 기도할 수 있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유행성 출혈열과 다리 골절의 고통을 겪었을 때도, 치유의 은총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매일의 삶은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흘러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김길수 교수의 글 「성삼문의 죽음과 김대건의 죽음」은 제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성삼문은 조선의 충신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습니다. 형장에서 그가 남긴 절명시에는 인간의 허무가 서려 있습니다. “둥둥둥 북소리 울려, 내 목숨을 재촉한다. 머리 돌려 바라보니 해가 지려 하누나. 저승길에는 주막 하나 없다는데 오늘 밤은 내 어느 집에서 묵어갈까.” 그의 시는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의 의로움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끝은 허무의 어둠이었습니다. 반면 김대건 신부님은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환란과 고난도 주님의 허락 없이는 있지 않으니, 환란의 의미를 생각해서라도 주의 계명을 지켜라.” 그리고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간다. 이제 환란도 고통도 없는 하느님의 기쁜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성삼문의 죽음은 인간의 신념으로 끝났지만, 김대건의 죽음은 하느님의 약속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는 허무였고, 다른 하나는 새출발이었습니다. 믿음의 유무가 생명의 끝을 ‘종말’로 만들기도 하고, ‘시작’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시겠느냐?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내 남편, 내 자녀, 내 집, 내 사명’이라 부르며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가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 맡겨진 것들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때 슬프고, 물건을 잃을 때 화가 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잠시 빌려주신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반지를 통해, 저는 그 사실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은 소유가 아니라 ‘기탁(寄託)’입니다.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기에 감사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나누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간다면 세상의 마지막 날이 온다 해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오늘 하루, 잃어버린 것을 통해 되찾은 믿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서 다시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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