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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강론>(2026. 2. 19. 목)(루카 9,22-25)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2-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십자가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니라 방법입니다.』 1) 여기서 “내 뒤를 따라오려면”은, “내가 주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이고, ‘제 십자가’는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은, “누구든지 내가 주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잘 참고 견뎌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뒤에서는 이집트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서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냥 이집트인들을 섬기자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탈출 14,11-12). 그들은, 바다에 빠져죽거나 이집트 군대의 칼에 맞아죽을 수밖에 없으니 육신의 목숨이나 지키자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탈출 14,15). 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리운 고향이 ‘앞에’ 있기 때문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뒤로 돌아서서 항복하고 노예가 되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일의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죽음의 바다’를 지나 ‘생명의 고향’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앞으로, 또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힘들다고, 재미없다고 돌아서면 멸망을 맞이할 것입니다. 만일에 ‘영원한 생명’을 원하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을 안 해도 되고, 십자가를 지기 싫으면 거부해도 됩니다.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은 의무가 아니라 각 개인의 자유 선택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십자가도 의무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십자가를 피하면, 힘든 일은 피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고 영원한 멸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어떤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살고 싶으면 이 약을 먹어라.” 하면서 특효약을 주었을 때, 그 병자가 약이 너무 쓰다고 하면서 먹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사는 것을 포기하고 죽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십자가의 길’ 끝에 부활과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만일에 부활과 생명이 없다면, 십자가는 아무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열매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열매가 없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9).” 현세적인 소원이나 빌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3) 이 모든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신앙생활이 힘든 것은 힘든 것이고,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라고 물을 수 있는데,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야고 5,7-8).”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1베드 1,6ㄴ-7).” 4) 사람마다 다른 탈렌트가 주어지는 것처럼, 십자가도 사람마다 다르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만 나에게 주신다.”가 우리의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의 십자가와 나의 십자가를 비교할 필요가 없고, ‘내 십자가’가 더 크고 무겁다고 불평해도 안 됩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지고 갈 수 없는 십자가라면, 예수님께서 함께 지고 가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만 시키시는 분입니다. <실제로는 이웃들이 나누어서 함께 질 것입니다. ‘사랑’은 십자가의 무거움을 덜어 주는 ‘큰 힘’입니다.> 십자가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니라 방법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십자가만 바라보다가 부활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송영진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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