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월요일 강론>(2026. 3. 23. 월)(요한 8,1-11)
복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11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1) 이 이야기는 다음 말씀들에 연결됩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아버지 하느님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일은, 죄인들을 회개시켜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이 가르침들을 좀 더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시청각 교육’ 같은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여자를 단죄하지 않으신 일은,
율법 대신 사랑을 ‘선택’하신 일이 아니라, ‘구원’이 당신의 본래 사명이라는 것을 나타내신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사명과 신원을 생각하면, ‘선택’이라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입니다. 예수님도 사랑이신 분입니다.
그러니 선택이 아니라 원래 그런 분입니다. 만일에 그 현장에 성모님이 계셨다면?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서 성모님께서 돌을 던지셨을까? ‘성모님만’ 죄 없으신 분이니, 돌을 던져야 한다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사람은 성모님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모님은 돌을 던지실 분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성모님이 돌을 던지신다는 것은 정말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성모님은 사랑과 자비만 가득하신 분이니, 그것은 성모님께는 선택 사항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는 말씀을, 그 여자도 들었습니다.
그 여자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너의 죄를 너 자신이 잘 알고 있으니, 너 스스로 자신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사람들이 너에게 돌을 던진다면, 저항하지 말고 감수하여라.(그냥 죽어라.)”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여자는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두 가지 모두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배반자 유다를 회개시키려고(살리려고) 끝까지 애를 쓰신 분입니다. 그러니 죄인에게 “너 스스로 자신에게 돌을 던져라.”,
즉 “자살하여라.” 라고 말씀하실 분이 아닙니다. <배반자 유다가 자기 죄를 뉘우치고 자살한 것은(마태 27,5) ‘예수님의 뜻’을 거스른 ‘큰 죄’를 지은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에게 돌을 던지면 감수하고 그냥 죽어라.”도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라는 말씀은, 사실은 “돌을 던지지 마라.” 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카 6,37).” 신앙인에게는 남을 단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남을 용서할 의무만 있습니다.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사제의 경우, 고해성사를 보겠다는 사람에게 고해성사를 줄 의무만 있고, 거부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것 또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사제의 본분입니다.>
4)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라는 말씀은,
‘무죄 선고’가 아니라 ‘집행유예 선고’입니다. 여자가 회개를 했는지 안 했는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회개를 했든지 안 했든지 간에, 예수님의 말씀은 ‘기회’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새 인생을 살 기회. 여자가 회개하고 ‘새 인생’을 산다면 구원받겠지만, 만일에 회개하지 않고 다시 죄를 짓는다면, 집행유예 되었던 벌까지 합해져서 가중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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