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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파스카 성야 / 송영진 신부 ~

<파스카 성야 강론>(2026. 4. 4. 토)(마태 28,1-10)


복음
<예수님께서는 되살아나셨고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입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8,1-10
1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2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으로 다가가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는 것이었다.
3 그의 모습은 번개 같고 옷은 눈처럼 희었다.
4 무덤을 경비하던 자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
5 그때에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6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와서 그분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
7 그러니 서둘러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서 이렇게 일러라.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리는 말이다.”
8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예수님 부활의 유일한 증거는 ‘만남’입니다.』

1) 예수님 부활의 유일한 증거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사도들(신앙인들)의 ‘만남’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사도 10,39-42).”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사도 15,3-8).”


사도들의 증언은 아주 단순합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사도들에게 ‘예수님 부활’은 ‘이론’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었습니다.

2) ‘빈 무덤’은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없다는 표시일 뿐이고,

부활을 증명하는 증거가 아닙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때 ‘빈 무덤’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일부 신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다.” 라고 주장하긴 했는데, 그 주장은 “당신들이 몰래 시신을 옮긴 것이다.” 라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가로막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은 증명할 수 없는 가설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시신을 훔치지 않았다.” 라는 신자들의 주장도 증명할 수 없는 무의미한 반박이기 때문에, ‘빈 무덤’에 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 없는 일입니다.

3) 무덤을 막은 돌을 천사가 옆으로 굴린 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무덤을 떠나신 뒤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돌로 막혀 있는 무덤을 그대로 놓아두고 ‘그냥’ 떠나셨습니다. 천사가 한 일은, 무덤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돌을 굴려서 무덤을 개방한 일은 부활의 시작이 아닙니다.


‘갈릴래아’로 가라는 지시는, 예수님께서 처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던 곳으로 가라는 지시인데,
이제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4) 부활하신 예수님과 신앙인의 ‘만남’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예수님을 안 믿고 있는데도 ‘만남’을 체험하고 신앙인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신앙생활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사는’, 또는 ‘매 순간 순간 예수님을 만나는’ 생활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 자체가 예수님 부활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곧 부활을 증언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1코린 15,19), 이 말을 반대로 표현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신앙인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