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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부활 대축일 / 송영진 신부 ~

<주님 부활 대축일 강론>(2026. 4. 5.)(요한 20,1-9)


복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믿음과 인내』

1) 신앙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음을 믿는 사람이고,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예수님처럼 부활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고, 그 생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스테파노의 순교 때의 일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사도 8,2).”
또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을 때, 그 원로들도 슬퍼하면서 울었습니다(사도 20,37-38).


그런 모습들에 대해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들은 부활을 믿는다면서 왜 죽음을 슬퍼하는가?” 라고 물을 것입니다.


스테파노의 경우를 보면,
순교 직전에 하느님과 예수님이 마중 나오셨다고 증언했습니다(사도 7,56). 그래서 우리는 스테파노의 영혼이 곧바로 하늘나라로 들어갔다고 믿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도 그렇게 믿었을 텐데, 그들은 왜 크게 통곡했을까?
또 바오로 사도는 왜 “아무도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말을(사도 20,25) 했을까?
작별 인사를 하더라도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했어야 하지 않는가?


부활을 믿고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것은, 죽음 자체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을 슬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난다는 것을 믿는다고 해도 이별이 슬픈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은,
“지상에서는 나를 못 보겠지만 하늘나라에서 보게 될 것이다.”로 해석됩니다.>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허무감과 무기력감에 빠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다고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어떻든 부활을 믿는 사람은, 슬퍼하면서도 믿음으로 슬픔을 극복하는데, 부활을 안 믿는 사람은, 슬픔 때문에 살아갈 힘을 잃어버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4,25-5,5).”


여기서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는 “환난을 겪어도 기뻐합니다.”로 해석됩니다. 믿음에서 인내가 생기고, 인내에서 기쁨이 생깁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으면 환난을 겪어도 인내할 수 있고,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나 자신의 부활을 믿어도 환난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과 인내로 환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굴복할 것이고......>

3)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히브 12,7.11).”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죽음이라는 것’을 정복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죽음이라는 것’이, 또 우리를 억압하는 ‘죽음의 세력의 힘’이 아직도 우리 삶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리에 참여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신앙생활은 ‘인내하는 생활’입니다.

- 송영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