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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부활 제 5주간 금요일 / 정인준 신부 ~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제1독서

<성령과 우리는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5,22-31
그 무렵 22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30 사람들이 이렇게 그들을 떠나보내자,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내려가 공동체를 모아 놓고 편지를 전하였다.
31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2-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예루살렘의 초대 믿음의 공동체는 유대인들에게 큰 박해를 받습니다.

 

사도들 중에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의 경비대장과 사두가이에 의해서 연행되어,

유다 지도자들, 원로들, 율법학자들, 대사제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언의 말을 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말을 받아들일 리 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더욱 거세게 박해하기 시작했고 식탁의 봉사자인 스테파노를 죽입니다.(사도 7,60)

 

여기에 가세해서 헤로데 임금은 유대인들에게 호감을 보이려고 요한의 형 야고보를

또한 죽입니다.(사도 12,1)

 

스테파노가 순교하고 나고 박해가 심해지자 유다 교우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예루살렘 교회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바르나바와 바오로 외에 교회의 사도들과 원로들은 유다와 실라스도 안티오키아

공동체에 파견하기로 하며 그들 편에 편지를 씁니다.

 

유대교에서 관습으로 내려오는 많은 것들은 폐지되었지만 우상에 바쳤던 제물과 목 졸라

죽인 짐승과 불륜을 멀리하라는 공식적 결정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에서 이방사회를 향한 선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세상 끝까지 당신의 복음을 선포하며 당신 제자로 삼으라는 소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특징은 새로움으로 성장하듯 초대교회의 모습도 성령에 인도되어 주님의 지체가

날로 새로움으로 변화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생명에 가장 중요한 사랑에 대한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2-13)

 

이 사랑으로 주님과 제자는 연결될 뿐 아니라 공동체의 지체들과도 일치를 이루어서

세상의 어떤 힘이나 박해도 관계를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고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생명도 바칠 수 있는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스승이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뽑으시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일치로 초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공동체의 지체들이 서로가 부족하더라도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요한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스승과 사랑하는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끼리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며 어떠한 박해에도 굴복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는 열정을 보입니다.

 

안티오키를 향해 예루살렘의 공동체로부터 파견되는 바르나바, 바오로, 유다,

실라는 살아 있는 초대 공동체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정월대보름의 '쥐불놀이'를 아시나요?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못으로 깡통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불씨를 담고 마른 풀이며, 나무 가지를 넣고 돌리다보면 얼마간

연기가 나다가 활활 불꽃이 타오르며 추운 날씨를 밝힙니다.

 

깡통의 불을 논둑의 마른 풀과 논 바닥에 버려진 짚더미에 붙이면 정월 대보름의 쥐불놀이는

장관을 이룹니다.

 

오줌을 쌀 정도로 하루종일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 콧구멍이고 이마고 온통

검정투성입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이내 잠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 작은 깡통의 불꽃이 넓게 펼쳐진 들녘을 환하게 타오를게 하듯 초대 믿음의 공동체는

성령의 불꽃으로 세상을 향해 타오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수난을 앞두시고 이 세상이 불로 타오르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씀하신대로

성령의 바람은 소아시를 중심으로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의 박해 앞에 수동적인 사도들의 모습에서 목숨까지 내어놓는 사랑의 불꽃으로

역동적인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모교회에서는 할례문제 때문에 토론을 하였습니다.

 

일부에서는 구약의 배경에서 할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방 교우들에게

구약의 굴레를 씌우지 않기로 결정하고 사도들과 원로들은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와 함께

 몇몇 뽑은 사람들을 안티오키아로 보내기로 합니다.

 

그편에 그들은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7-28) 라는 서신을 보냅니다.

 

애니어그램(Enneagram) 9가지 유형 평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완벽추구형인 1번, 

매사 정이 많고 남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2번, 

성공과 유능함 추구하는3번이 있습니다. 

 

따뜻하고 이해심이 많으면서도 독창적인 예술형인 4번,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사고형인 5번, 

규범과 규칙에 충실한 성실형입니다.6번, 

항상 남을 즐겁게 하며 상상력이 풍부한 7번, 

단조직업적이고 권위적인 8번, 

안정과 평화주의자인 9번이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완벽추구나,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아니라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고 편견이 없는 우유부단한 모습의 9번이 많은 사람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 형이라는

데에는 한편 의아하기도 하지만 전체를 보면 당연하다는 의견입니다.

 

양쪽의 의견을 중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도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단점을 극복하고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며 평화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이방인을 향한 초대 교회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바로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우리말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장은 손해보고 줏대 없는 것 같아도 따지고 보면 전체를 조화롭게 만들며 수용하는

모습으로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가장 절실한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분열되고 서로 등지는 것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내 색깔을 양보하지 않고

남에게 우리의 입장을 강요하기 때문이지요.

 

예루살렘의 공동체의 너그럽고 배려하려는 태도가 결국 안티오키아의 이방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로 이끌어 갈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덕의 바탕을 ‘중용’에 두고 있지요. 아무리 좋아도 한 편으로 쏠려 있으면 공정성을

잃기 쉬운 법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걸 맞는 말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원칙적이고 철저하면서도 이웃에게는 너그럽고 포용적인 태도가 바로

바람직한 공동체의 봉사자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조건은 상대를 위해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도 바칠 수 있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강하게 주문하십니다. 사랑은 관계성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참 중요한 것이지요.

 

자신을 양보하며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려는 것도 사랑의 조건인데 여기에다

생명까지 바친다면 그 어느 것과도 비교가 될 수는 없는 사랑의 바탕이며 비법인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인준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