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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 금요일 강론>(2026. 5. 8. 금)(요한 15,12-17)
복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2-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 스승, 형제, 친구, 신랑이십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 스승, 형제, 친구, 신랑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생살여탈권’을 포함해서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주님’이신 분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요한 3,35).” 그리고 예수님은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고, ‘구원의 길’을 당신이 먼저 앞장서 가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스승’이신 분입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에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을 때, 사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17).”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은 예수님의 형제입니다.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로마 8,16-17ㄷ).” 라자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친구’ 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요한 11,11).”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약혼자’로 표현했고,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표현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2코린 11,2).”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요한 3,29).” ‘형제, 친구, 신랑’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종속 관계’가 아니라 ‘사랑하는 관계’ 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사랑은, 하느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우리가 완전히 하나로 결합하고 일치할 때 완성됩니다. 신앙생활은 그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말씀에서 ‘계명’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하게 되는 ‘주님의 당부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실천해야 하는 명령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억지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위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당부’하셨고, ‘호소’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은, 13절,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에 연결됩니다. 이 말씀에서 ‘목숨’은 ‘모든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일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14절,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라는 말씀은, “나를 사랑한다면 서로 사랑하여라.”, 또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명령’이라는 말과 17절에 있는 ‘명령’이라는 말은, 12절의 ‘계명’을 가리키는 말이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강압적인 명령’이 아니라,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분의 당부이고 호소입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라는 말씀은, “나는 너희를 ‘벗’으로 사랑한다.”, 또는 “너희는 내가 사랑하는 ‘벗’이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대등한’ 위치에서 모든 것을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3)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예처럼 할 것인가? 자유인으로서 할 것인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할 것인가? 사랑하니까 기쁨으로 할 것인가? 사실 ‘사랑’도, ‘기쁨’도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기 싫다는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먼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로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사랑받기를 원하는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는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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