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러 신부들의 말씀

~ 부활 제 5주간 토요일 / 송영진 신부 ~

<부활 제5주간 토요일 강론>(2026. 5. 9. 토)(요한 15,18-21)

 

복음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8-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1) 여기서 ‘미움’은 ‘종교박해’를 뜻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라는 말씀은, “너희가 박해받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너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복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박해를 받아야 한다.”가 아니라, “박해를 받을 수도 있다.” 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면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안 믿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음을 선포하는 이를 환영하고 접대하지만, 안 믿고 거부하는 사람은 배척하고 박해합니다.

 

초대교회의 이야기를 보면,

사도들이 처음부터 미움과 박해만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6-47).”

 

“백성은 그들을 존경하여,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났다(사도 5,13ㄴ-14).”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호감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정상적인 일입니다. ‘복음’은 ‘구원의 진리’이고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세상의 박해를 받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2)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데도 박해자들은 왜 그 소식을 전하는 이들을 배척하고 박해하는 것일까?

사도행전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사도 4,2).”

 

이 말은, 부활을 안 믿는 사두가이들의 박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사도 5,17-18).”

이 말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본 기득권층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서 사도들을 박해했음을 나타냅니다. <사도행전의 내용을 보면, 사두가이파가 시작한 박해에 바리사이파가 나중에 합류하고, 결국 유대교 전체가 박해를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이들과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유대인들이 박해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새로운 신앙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종교 질서와 사회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3)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가 신앙과 복음을 버린다면 종교박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마태 10,16).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이리 떼’인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환대하는 이들도 분명히 많은데, 그래도 ‘이리 떼’ 같은 사람들도 만나야 하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선교활동입니다.

 

선교활동을 하다가 환대를 받든지 박해를 받든지 간에, 절대로 버리면 안 되는 것은 신앙과 복음입니다. <만일에 ‘이리 떼’에게 굴복해서 ‘양’이기를 포기하고 ‘이리’로 변신한다면, 박해를 안 받겠지만, 그것은 ‘영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4)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박해를 두려워하지 마라. 용기를 가져라.” 라는 말만 하고,

어떻게 해야 용기를 가질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방법을 몰라서 말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고 해서 없었던 용기가 갑자기 생기는가? 답은 ‘성령’과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때에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숨어 있었던 사도들이(요한 20,19), ‘밖으로 나가서’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것은 성령을(성령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사도 2,1-4).

 

사도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 한 일은, 또는 성령을 받기 위해서 한 일은,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한’ 일이었습니다(사도 1,14). 박해에도 굴하지 않는 ‘신앙인의 용기’는 ‘성령’께서 주시고, 성령의 도움을 잘 받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