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사도 축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사랑받아 사랑하도록 부름받은 우리!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호명환 번역)
하느님의 사랑은 변함없고 취소될 수 없는 은총이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랑에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모든 이는 이미 선택되었습니다.
사랑받아 사랑하도록 부름받은 우리
2026년 7월 2일 목요일
리처드 신부는 우리가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받아들일 때, 그 체험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먼저 은총 안에서 변화된 만큼만 다른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만큼만 다른 이들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 안에서 선하고 특별한 존재임을 깊이 깨닫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확언하거나 전할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중심적 욕구를 내려놓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게 되면, 더 이상 무대의 중심에 서려는 불안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들의 존엄과 특별함을 드러내고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 데 마음과 힘을 쏟을 수 있습니다. 사랑받은 이들만이 사랑받음의 은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선택됨을 "포용적 선택됨"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달리 말해, 선택됨이 다른 이들에게도 그 은총을 전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종교는 거의 언제나 "선택받지 못한 이들", "자격 없는 이들", "부정한 이들"을 배제하는 체계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은 세상을 향한 기쁜 소식이 아니라 단지 "나만의 소속 체계"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배타적 선택됨 속에서는 "선택된 이"가 자신의 체험을 다른 이들을 위한 선물로 보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특권으로 여깁니다. 이는 결국 자기만족과 교만에 빠진 종교를 낳습니다. 참으로 사랑받은 이들만이 그 사랑받음의 은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권장하고 싶은 것은 신명기 7장 7–9절과 로마서 11장을 차분히 읽어보시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모세와 바오로 사도는 "선택됨"과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아름답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우월한 집단"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연약하고 상처 입은 이들을 모아, 하느님께서 어떻게 변화시키시고 치유하시는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변모 메시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시청각 교재"가 누구인지 아셨습니다. 그분은 "나는 건강한 이들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병든 이들을 위해 왔다."(루카 5,31–32 참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인들과 신비가들의 삶은 결코 자신을 가리키지 않고,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자신들을 선택하시고, 쓰시며, 사랑하시는 그분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다. [1]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됨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선택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받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축복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 맡기는 태도를 요구하며, 더 나아가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는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께 쓰임 받은 이들은 모두 이 진리를 압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선택하시고, 그 선택하신 이를 쓰시며, 그들이 쓰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이 선택되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너무나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은 변함없고 취소될 수 없는 은총이기에, 우리의 몫은 그 사랑에 마음을 열어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행위도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더 크게 만들 수 없고, 또한 그 사랑을 줄일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 이미 붙들려 있습니다. 차이는 단지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이와 받아들이지 않는 이 사이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쪽 모두 객관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받아들이는 이는 그 사실을 기뻐하며, 그 깨달음 속에서 언제나 새 생명을 길어 올릴 뿐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언제나 내성적인 성향을 결함으로 여기며, 더 사교적으로 되려고 애써왔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묵상들과 리처드 신부님의 가르침을 통해, 이제는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제가 결코 홀로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감싸 안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품 안에 안겨 있습니다.
—Veronica S.
References
[1] Adapted from Richard Rohr, Things Hidden: Scripture as Spirituality (Franciscan Media, 2022), 44–45.
[2] Adapted from Rohr, Things Hidden, 182.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Credits: Tony Sebastian, untitled (detail), 2019, photo, India,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마치 여러 가지 꽃으로 엮어진 꽃다발처럼,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존재로 온유하게 품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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