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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영성이야기

~ 사랑이신 하느님만 믿을수 있다. ~

  하느님의 실체를 체험하다

사랑이신 하느님만 믿을 수 있다

작가 만프레드 하우스만Manfred Hausmann의  작품에서 우리
는 기이한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하느님께
드리는 이별 편지'로,  하느님에게서 기쁨을 잃은 젊은이가 쓴 편
지다.
   "사랑하는 하느님!  제가  당신을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저에게
는 달리 부를 만한 호칭이 없고  어릴 때부터 당신을 줄곧 그렇게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정말 계시다면 저를 이해하실 것입
니다. 저는 이제 당신에게서 멀리 떠납니다. 제가 당신과 함께 했
던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 저는 당신을  좀 더  가깝게 사귀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당신께서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요구
하시지만 인간이 당신을 필요로 할 때는 가끔씩만 함께해 주십니
다.
   지금 저에게는 당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정말 존재하
신다면, 그리고 당신이 인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한
가지만 당신께 청하고 싶습니다.  저를 이 혹독한  불행에서 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 어쩌면 저는 나중에 당신께 다시 돌아올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 우리 관계는 더 나아질 수도 있겠
지요. 그때는 제가 우리 관계를 좀 더 돈독하게 하는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 그때까지 저를 제발 내버려 두십시오."
   우리는 이 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문장 하나
하나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편지에 깔린  근본 사상
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이별 편지와 전혀 다르다고 말한 만프레
드 하우스만의 지적이 옳음으 알 수 있다. 왜 그런가?
   이 젊은이는 마음속에 많은 어려움과 불쾌한 체험과 선입견 등
이 가득해  하느님께 대한 온갖 불만을 종이 위에 옮기고 있을 뿐
이다.  그는 하느님을  인간에게 지나치게 요구하고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엄격한 입법자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없기에 하느님에게서 벗어나려고 한다.  동시에  삶의 불안
뿐 아니라 실제로  하느님께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근심스런 걱
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고백한다.
   이 젊은이는  아직  하느님을  실제 모습으로  체험하지 못했다.
하느님을 무한한 행복을 주는 사랑의 신비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
은 언젠가는 하느님을 떠난다. 하느님을 사랑으로 여겨야 하느님
께 계속 머무를 수 있다. 오직 사랑의 하느님만 믿을 수 있다.
   신앙이란 라틴어(credere=cor+dare)로 '자신의 마음을 주다'라
는 뜻이다. 우리는 사랑의 하느님께만 마음을 내맡길 수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는  선하거나  악하게,
신심이 깊거나 신심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이런 모든 선행과 악행에도 하느님께 사랑받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정당성은 어디 있는가? 사도 요한의 말씀
에서 엿볼 수 있다.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의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3,20)
   이에 대해 로마노 과르디니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인간 삶에는) 과오와 태만에 대한 인식으로 용기를 빼앗
기고, --- 더 이상  믿을 수 없어 결정과 삶의 계획을 돕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 바로  그런 순간을 위해  요한은 이 말씀을 기
록한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하느님 지식(사랑!)에 맡겨라. 자
신을 의롭게 하려고 골몰하지 마라.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신다. 이
것으로 충분하다."
   '자신을 의롭게 하려고 골몰하지 마라!'  이는 구원의 말씀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첫 번째  선교 여행의 장소는  우리 마음이다.
거기에서 우리가 선포해야 하는 기쁜 소식은 이렇다.
   "그대는 사랑을 받고 있다. 참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한하신 하
느님 사랑을 받고 있다."
   하느님 사랑에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은 삶의 많은 부분이 변화
되는 것을 체험한다. 그는 질서 있게 되고 삶은 방향을 찾고 마침
내 만발한다.  품고 있던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속에  확실성의 느
낌이 가득해진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사는  행복'을  느낀다.
아이가 아버지와 이야기하듯 하느님과 이야기한다.  그의 하느님
신뢰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에도 지속된다.
   그러므로 그는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그리고 하느님
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진정
된다. 달리 말하면 그 물음은 삶의 큰 기쁨을 누리면서 이미 대답
을 찾은 셈이다.  이런 체험들은 어떤 작가가 다음의 말로 표현한
내용에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내가 바라보는 별
      내가 서 있는 바위
      내가 신뢰하는 지도자
      내가 의지하는 지팡이
      내가 살기 위해 먹는 빵
      내가 머무르며 쉬는 샘
      내가 추구하는 목적.
      주님, 이 모든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신앙이 깊을수록 우리는  "마음
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모든 힘을 다하여"  그분
을 사랑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가능하다. 비록 그가 다
른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다.
   어떤 신비가가  "하느님을 대하는 인간의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
가?" 하고 제자들에게 물었다.  제자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스승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억압되
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여라.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심을 분명히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인간
의 올바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