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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영성이야기

- 죄 / 그리스도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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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밑바닥 깊숙이 떨어지는 것은 언제나 겉으로 보기에는 해가 없는 것 같은 가벼운 잘못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죄에 대한 호의가 커진다. 양심을 굽히는 일과 의무를 소홀히 하는 일과 하느님께 대한 불복종에 차차 익숙해지고, 차차로 큰 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어떤 악이나 죄의 바탕에는 역시 항상 탐욕과 교만이라는 두 가지 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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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영에게서 하느님인 빛을 빼앗아가므로 눈을 멀게 하고 죄는 영에게서 하느님인 지능을 빼앗아가므로 어리석게 만들며 죄는 영에게서 하느님인 깨끗함을 빼앗아가므로 더럽게 한다.

 

죄는 죄를 지을 뜻이 있고, 죄를 짓는다는 자각이 있고, 어떤 행동이 죄가 된다는 자각을 하고 나서도 계속 죄짓기를 원할 때에 죄가 있는 것이다. 덕행이건 죄의 행위이건, 모든 것이 어떤 행위를 하는 뜻에 달려있다. 언제나 뜻이 행위에 가치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죄는 언제나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해 있지 않고, 그것을 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사람에게도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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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유혹과 완전한 죄과를 구별할 줄 모른다. 유혹은 공로를 주고 은총을 빼앗아 가지 못하는 시험이고, 죄는 공로와 은총을 없애는 타락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적인 사건과 죄를 구별할 줄 알지 못해서 죄를 지었다고 공연한 걱정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자연 법칙을 억제되지 않은 본능들과 구별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지금 자연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그것이 아니고 좋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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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최초의 조상들에게 주셨던 인간의 본성에 딸린 모든 법칙은 좋은 것이었다. 먹을 것, 휴식, 마실 것 따위의 욕구 말이다. 그러다가 죄와 더불어 동물적인 본능들이 침투해서 방탕과 가지가지 관능성과 더불어 자연 법칙과 섞여서 원래 좋던 것을 절제의 부족으로 인하여 더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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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휴식과 음식에 대한 욕구를 들어주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반대로 크게 차려먹고 술에 취하고 오랫동안 한가로이 있는 것은 죄라는 것을 네가 알 것이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자 하는 욕구도 죄가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땅을 채우기 위하여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주셨다. 그러나 다만 관능을 만족시키기 위하여서만 결합하는 행위는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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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죄인 육욕의 죄와 재물에 대한 욕심의 죄를 생각 보자. 어떤 사람이 음란한 죄를 지었거나 음란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하니, 사람은 어쩌다가 죄와 유혹을 혼동하거나 불건전한 욕망에 부자연스럽게 생긴 자극과 병적인 번민의 반응으로 일어나는 생각에 대해서 같은 판단을 하기 때문이며, 또는 어떤 때 살과 피가 영혼 안에 뜻하지 않은 호소를 울려 퍼지게 해서 영혼이 미처 그것들을 억제하기 위하여 경계태세를 취할 시간의 여유도 없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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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예수의 베드로이고, 자비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네 앞에 와서 우는 마음을 가만히 조심성 있게 살펴보고 감동시켜 실제로 있었거나 가상의 죄나 소심증의 모든 면을 알도록 해야 한다. 가만히 그리고 조심성 있게 라고 말했다. 네가 선생과 목자인 것 외에 의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의사는 상처를 덧나게 하지 않는다.

 

또 때로는 진흙 대신에 진흙이 튀지 않았는가 하고 걱정하고, 그 꽃받침 속에 내려온 이슬과 진흙이 튄 것과를 혼동하는 백합꽃이 있는 것을 보기도 할 것이다. 하늘나라를 너무 갈망하는 나머지, 그들과 태양 사이에 가로질러 있어서 잠시 어두움 속에 두지마는 곧 이어서 그 깨끗한 꽃부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까지도 얼룩이라고 생각하고 염려하는 영혼들이다.

 

너무도 죄가 없고 또 죄 없는 채로 남아 있기를 열망해서 사탄이 상상으로 놀라게 하거나, 육체의 실제적인 병을 이용해서 육체의 유혹 또는 육체 자체를 자극함으로써 놀라게 하는 영혼들이다. 그런 영혼들은 죄인들이 아니라 순교자들이기 때문에 위로를 받고 옹호되어야 한다.

 

또 남의 재물이나 다른 귀중한 것들에 대하여 탐욕으로 무자비하게 가난한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은 저주 받은 죄이고, 시민들과 하인들 또는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빵을 주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자기와 자녀들의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하여 이웃에게서 빵을 훔치는 사람의 죄는 덜 중대하고, 그것도 훨씬 덜 중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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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재물을 가지고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을 죽이는 사람과 같고, 제단에서 시중드는 것도 만일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면 죄가 된다. 인간적인 대성공의 실제는 영원한 벌이며 또 가난은 흔히 죄에 대한 억제가 되니까 죄를 덜 짓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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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완전히 알고서 행동하는 사람은 무지로 인해서 행동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죄를 짓는 것이고, 자유로 동의해서 행동하는 사람은 죄를 짓도록 부추김을 받은 사람보다 훨씬 더 죄를 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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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었다고 뉘우치는 사람은 아무도 절대로 단죄하지 않았다는 것을 특히 기억하여라. 네 형제들과 네 자녀들의 죄를 일곱 번씩 일흔 번, 또 일흔 번씩 일흔 번까지도 용서하여라. 어떤 병자가 다시 병에 걸렸다고 해서 그에게 구원의 문을 닫는 것은 그를 죽이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네게 분명히 말하지만, 때로는 겉으로 보기에 죄와 같지마는 사실은 순교이고, 그래서 순교를 한 데 대하여 주는 상급을 받을 행위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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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빛을 알라고 창조되었었지만 암흑이 타락시켜 그 희생물을 만든 피조물인 너희가 죄를 짓지 않고 살기는 숨을 쉬지 않고 살기보다 더 불가능하다. 암흑! 암흑은 끊임없이 너희를 에워싸고 있다. 암흑은 너희를 둘러싸고 고해성사로써 지워진 것을 되살아나게 하며, 또 너희가 하느님께 속하겠다는 의지를 그것에 맞세워 놓지 않기 때문에 세례로 인하여 해독 되었던 그 독약으로 또다시 너희에게 독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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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특은 받은 피조물들을 속이려고 그 곳에 침입하였었고, 그들이 죄 없을 때에 죄를 짓게 할 수가 있었으니, 결백하지 않게 된 지금은 그들을 더 쉽게 죄로 이끌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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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들아! 사탄이 어떤 오솔길로 해서 오는지 아느냐? 일반적으로 잘 다져진 길이 셋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없는 때가 결코 없다. 세 가지는 육욕과 돈과 정신의 교만이다. 그리고 육욕은 절대로 없는 때가 없는 것이다. 다른 사욕들의 속달 파발꾼으로서, 육욕은 그 독을 뿌리면서 지나가고, 그러면 사탄의 꽃이 무더기로 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 너희 육신을 억제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예속이 다른 모든 예속의 시초인 것과 같이 이 억제가 다른 모든 억제의 시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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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진 천개의 범죄 뒤에는 적어도 9백 개가 여자를 차지하고자 하는 갈망이나, 남자가 아직 만족시켜 주지 못하거나 더 이상 만족시켜 주지 못하게 된 욕망으로 불타는 여자의 의도에 뿌리박고 있다. 남편을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정신과 그들의 육체로 사랑하지 않는 아내들은 남편을 간통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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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황금은‥‥그러나 황금은‥‥타락시키는 길을 뚫어주는 관건이고, 사람들의 행동 100분의 99의 처음과 끝이다. 빵과 여자 때문에 사람은 도둑이 된다. 권력을 위하여서는 살인까지 한다. 그러나 황금을 위하여서는 우상숭배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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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지능의 음란이고, 음란은 무질서이다. 이것은 루치펠 자신의 죄이므로 가장 큰 죄다. 자기의 욕심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것을 만족시키기를 원하는 자유롭고 의식적인 지능에 유도된 무질서이다. 음란은 자연법칙을 거스르고 정의를 거스르고 하느님과 자기 자신과 우리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거스르는 무질서와 폭력이다. 육체의 음란도 그렇고, 세상의 재물과 권력을 노리는 음란도 그렇고, 어떤 음란이든지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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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교만은 육체와 지배의 갈망과 더불어 사람과 세상 안에 있는 모든 악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교만은 사탄이 뚫고 들어오는 틈이므로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고 겸손 하여라. 만일 어떤 사람에게 교만이 남아 있으면 그의 회개에 대하여 착각하지 말아라. 교만은 정신의 더러움이고, 사랑이 없는 것은 마음의 더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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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완전히 용의주도하게 행해지지 않은 행위를 죄로 인정하지는 않으시며 '성령을 거스르는 죄', 완전한 인식과 자각으로, 자비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가장 큰 죄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서 실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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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는 잔인하다. 그 사람은 혀로 남의 평판을 죽인다. 그러므로 살인자와 다를 것이 없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살인자보다도 더 나쁘다는 말까지 하겠다. 살인자는 육체만을 죽인다. 그런데 거짓말쟁이는 한 사람의 좋은 명성과 추억을 죽인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이중으로 살인자가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가 중상하는 사람과 그 가족 전체의 명예를 한꺼번에 상하게 한다.

 

사람이 저지른 첫 번째 죄가 어디로 까지 끌고 가는지 보아라. 저 사람은 처음에 자기 아내 될 사람에 대한 맹세를 어겼다. 그 다음에는 하느님께 대한 맹세를 어겼다. 그 다음에는 중상(中傷)하는 사람, 거짓말쟁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 다음에는 술에 빠졌고, 이제는 살인까지 했다. 사람은 이렇게 해서 사탄에게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것을 항상 기억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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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거짓말, 돈에 대한 욕심, 술 취함, 영적인 감정과 실천이 없는 종교의 죽은 예배행위가 어디로 이끌어갈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라고 그런 것이다. 그래 살인자에게는 상징적인 식사가 무엇이었느냐? 아무것도 아니었다! 푸짐한 식사였고, 독성(瀆聖)이었다. 그리고 이 식사 중에 그는 살인자가 되었다. 장차 많은 사람이 그와 같이 될 것이다. 어린 양의 맛을, 양에게서 난 어린 양이 아니라, 하느님의 어린양의 맛을 혀에 느끼면서, 그들은 죄악을 향하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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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마음들의 부패는 아무 불도 살라버리지 못할 것이다. 지옥의 불까지도. 그 부패는 영원할 것이니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인류야, 네가 그렇게도 썩기를 좋아하면 누가 너를 구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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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조국에 대해 도를 지나친 사랑도 죄가 된다. 그것은 이기주의가 되기 때문이다. 이기주의는 언제나 죄의 이유와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기주의는 마음속에 나쁜 뜻의 씨를 뿌려 하느님과 하느님의 계명에 반항하게 하기 때문에 죄가 된다. 이기주의자의 정신은 하느님도 하느님의 진리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이기주의자 안에서는 교만이 연기를 뿜어 진리들을 가린다. 교만해지기 전에 보던 것처럼 진리의 순수한 빛을 보지 못하게 된 정신은 안개 속에서 이유들에 대한 소송을 시작하고 거기에서 의심으로 넘어가고. 의심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과 그분의 정의에 대한 사랑에서뿐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벌에 대한 두려움에서까지도 이탈하는 데로 넘어간다.

 

따라서 죄를 쉽게 짓게 되고, 죄를 쉽게 짓는 데에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영혼, 이제는 그를 인도하는 하느님의 뜻을 가지지 못하게 되므로 죄인인 자기의 뜻의 지배에 빠지게 되는 영혼의 고독이 온다. ! 죄인의 뜻은 매우 무자비한 사슬이다. 그 사슬의 한 끝은 사탄이 잡고 있고, 사람의 발에 매여 있는 다른 끝에는 무거운 쇠공이 달려 있어서, 그를 진흙과 어두움 속에 노예로 몸을 굽게 한 채 붙잡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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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알고도 계속 오류에 남아 있으면 잘못이 된다. 그러나 자기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데, 아무 목소리도 와서 내가 당신들에게 가져오는 것이 진리요. 당신들의 망상을 버리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시오, 그러면 하늘을 얻을 것입니다하고 말해 주지 않았다면, 죄가 없다.

 

하느님은 공평하시다. 덕행이 이교도 세상의 타락 속에서 저 혼자 이루어졌다면, 하느님께서 그 덕행을 갚아 주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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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죄는요? 그리고 증오할 만한 예배는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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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는 이스라엘 사람이건 아니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다. 이교도들의 특권이 아니다. 이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율법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을 때에는 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덕행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언제나 덕행일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말 한다마는, 자비로우신 능력의 길들은 너무도 넓고 모두가 덕행이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에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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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분명히 말하지만, 미래에 있어서 자기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정의와 성덕으로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따를 사람들은 하느님께 잘못 보이지 않고 그분께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의인들의 영혼을 죄인들의 영혼을 정말로 영원히 갈라지게 할 것은 악의와 나쁜 의지와 알려진 진리를 확고하게 거부하는 것이고, 특히 계시된 진리를 공격하고 반대하는 것이며 타락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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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진리를 알게 되었을 때 고집해서 오류 속에 머물러 있으면, 그때에는 죄를 짓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죄가 되는 많은 것들이 당신들에게는 죄가 안 됩니다. 그것은 어떠한 하느님의 법률도 당신들에게 그것을 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이 주신 명령을 알면서 거역하고 나는 이것이 나쁜 일인 줄 안다. 그래도 하련다.’ 하고 말할 때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공평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줄로 알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벌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과 악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으면서 악을 택하고 고집스럽게 행하는 사람을 벌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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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이 나쁜 일인 줄 안다. 그래도 하련다.’ 하고 말할 때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이 윤리적으로 잘못이 되기 위하여서는 그 바탕이 죄를 지으려는 뜻이 있어야 합니다. 또 죄인들이 죄 중에 있으면서 죄인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듣게 되면 더 저항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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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감과 관계가 없는 것과, 무관심은 미움이 아니니까? 죄가 아닌 것으로 여러분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반감과 관계 단절과 무관심은 벌써 미움입니다. 다만 이것들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 때문입니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열에 아홉은 미움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감이나 멀리함이나 무관심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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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떤 사랑이든지 질서를 어길 때, 즉 하느님의 뜻과 지켜야 할 의무를 어길 때에, 또 그 때에만 죄가 됩니다. 죄는 뉘우침과 보속이 뒤따르지 않는 때에만 회복 할 수 없는 파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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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당하는 어떤 시간에 슬퍼하는 것은 죄가 아니고 슬픔에 몸을 내맡기고 무기력이나 실망에 빠지는 것이 죄가 됩니다. 사탄은 누가 정신적인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것을 보기만 하면 곧 오게 마련이며 사탄은 언제나 호감이 가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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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하느님의 작품이 아니라, 반역한 천사의 자유의사의 작품입니다. 제 스스로 원해서 생겨난 악에서 하느님께서는 좋은 목적, 즉 사람들이 공로를 세운 영광을 차지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데 소용되는 목적을 끌어내신다는 것입니다. 악에 대한 승리는 선택된 사람들의 월계관입니다. 만일 악이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결과를 생기게 할 수 없었더라면, 하느님께서는 악을 파괴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사람들이 죄를 짓게 허락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죄짓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죄에서 장차 더 큰 이익이 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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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시 죄를 짓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그러나 넘어지고 나서, 다시는 넘어질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려고 한 걸음도 옮겨놓지 않으려고 하는 어린아이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아이라고 말하겠지요. 우리 모두가 어렸을 때는 그런 과정을 거쳤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 아버지가 우리를 더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걸음걸이가 확실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겠지요. 우리가 넘어지면 어머니가 얼마나 수없이 입 맞춰 주고 아버지가 얼마나 쓰다듬어 주고 했는지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늘에 계신 지극히 다정하신 우리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땅에 넘어져서 우는 어린 자녀에게로 몸을 굽히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울지 말아라. 내가 일으켜 주마. 다음번에는 더 조심해라. 이제는 내게 와서 안겨라. 내 품에서는 네가 아픈 것이 없어지고, 너는 튼튼해지고 나아서 기쁘게 내 품에서 나갈 것이다.’ 하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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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약속을 듣고 아주 기뻐하시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비를 베푼다.고 하신 약속입니다. 착한 사람들의 후손 천대까지, 그리고 악의로가 아니라 경솔함과 마귀의 계략으로 죄에 떨어진 가엾은 사람의 아들들의 천 번째 약함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또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뉘우치는 마음과 눈물에 젖은 얼굴로 아버지,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압니다. 아버지 앞에서 저를 낮추고 그것을 인정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용서는 제가 참 삶을살되돌아오기 위한 힘이 될 것입니다.하고 말하면, 주께서는 팔을 버리실 것입니다. 당신이 비록 하느님을 죽였더라도, 당신 마음속에 참된 뉘우침만 있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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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마시오. 여러분이 약함으로 인하여 죄를 짓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냉정하게 되시는 것은 다만 여러분이 끝까지 죄 중에 남아 있어서, 죄를 실제로 원하고,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죄를 가지고 여러분의 소름끼치는 신을 만드는 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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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은 사람도 뉘우치고 어떤 성향에도 저항하면, 공로를 세우고, 이렇게 저항할 때에 초자연적인 도움이 없지 않게 된다. 유혹을 당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싸움이야 말로 승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또 네가 믿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실수를 했으나 그리고 나서 뉘우치는 사람은 용서하고 도와주기만을 바라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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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란 완전한 사랑이다  과연 죄를 짓고서도 뉘우치는 사람은 내 연민을 만날 것이다. 불쌍한 영혼들은 우리에게 연민을 불러일으켜야지, 혐오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아버지의 마음, 착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한다. 착한 아버지는 자녀들의 병에 대해서 절대로 혐오를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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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는 죄를 말하느라고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죄짓는 것을 삼가게 된다.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 고통이 벌써 속죄하는 보속이 된다.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교만으로나 벌에 대한 공포로 괴로워하지 않고, 위반함으로써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괴로워하면, 그 때에는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죄가 사라진다. 유죄성(有罪惺)이 네게 고통을 주어야지, 벌 자체가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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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웃을, 모든 이웃을 거룩한 사랑으로 사랑하여라. 이해관계의 수상한 야합(野合)으로 사랑하지 말고, 그런 야합이 있으면 저주를 받는다. 그러나 반대로 관능성에 대한 갈망이나 돈에 대한 이해관계가 있는데도 관능성이나 돈이 섞여들지 않는 한 저주는 사라진다. 이웃이 어떤 사람이든지 착하게 대하고 옳지 않은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벌하는 일은 하느님께 맡겨 드리고, 너희는 복종하여라.

 

악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던지, 악과 끈기 있게 싸워라. 그리고 참을성 있어라. 악의 일은 한계를 모르니까, 사도의 일에도 한계가 없다. 마귀는 이만하면 됐다. 이제는 피곤하니 쉬겠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악은 절대로 쉬지 않으므로 선도 원수의 일을 할 수 있는 대로 무효하게 만들기 위하여 항상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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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세 가지 더러움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유지할 줄 아는 것보다 산이 위치를 바꾸는 것이 더 쉽다. 어른 주위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심하게 움직이고 술렁인다. 그리고 어른은 그것들이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것을 언제나 막을 수는 없다.

 

하늘의 벌을 유발하는 것은 언제나 하느님께 대한 예배와 하느님의 율법의 모독이다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홍수와 같은 전반적인 재앙을 다시는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스스로 점점 더 끔찍한 재앙을 만들어낼 것이니, 그 재앙들에 비하면 대홍수와 소돔과 고모라를 파괴한 불비는 동정 가득한 벌로 보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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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인간적인 척도(尺度)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보통죄와 사죄(死罪)를 구별하지 않으신다. 죄는 어떤 것이든 하느님을 슬프게 한다. 뉘우침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용서할 마음을 가지시게 한다. 은총에 반항하면 하느님께서는 가혹하리만큼 엄하게 되신다.

   

하느님께서는 너무나 비통하고 흥분해서 살인자가 되는 사람은 용서하실 수 있지만, 야심으로나 사람들의 존경을 추구하기 때문에 살인자가 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으신다. 사람을 죽인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일곱 갑절이나 큰 벌을 받을 것이니, 사탄에 대한 예속으로 인간 권력의 자격으로 정당하지 않게 유죄를 선고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엄격으로 일흔 일곱 갑절이나 벌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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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인자는 우리의 착함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은 누가 한번 잘못하면, 자기는 항상 죄를 지으면서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첫 번 잘못한 다음에는 냉혹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사람이 벌을 받지 않고 같은 죄에 무감각하게 떨어지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죄를 지을 때에는 벌을 하지 않으시고, 마음에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당신의 인자가 사람을 회개시키는 데 소용이 되지 않고, 사람이 그것을 무능으로 생각하면 벌하신다. 그때에는 벌이 내려진다. 핏속에 병균이 하나만 있을 때에는 병이 나타나지 않고, 첫 번째 병균에서부터 번식한 많은 병균으로 피가 썩으면 발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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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그것을 속죄해야 한다. 그런데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창조된 첫 째 사람에게서 모욕을 당하셨다. 그때부터 죄는 점점 커지기만 했다. 그리고 대홍수의 범람도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불비도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데 소용되지 못했다. 물도 불도 말이다.

 

세상은 사탄이 왕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끝없는 소돔이다. 그래서 땅을 씻기 위하여서는 어떤 삼위일체가 와야 한다. 사랑의 불, 고통의 물, 희생의 피가 그것이다. 땅아, 이것이 나의 선물이다. 나는 이것을 네게 주려고 왔다

 

인류는 항상 죄를 지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구속자가 되기 전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의 모든 고통을 정신으로 맛볼 것이다. 그래서  수난으로 끝을 맺은 33년 동안의 피로한 생활로 속죄하고 구속한 다음,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내 피를 전부 흘린 다음, 피가 다 빠져나간 희생자의 몸에서는 원죄를 씻는데 유익한 물이 빠져 나왔다. 나는 완성된 희생으로 너희들을 원죄에서 구해냈다.

 

만일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내 편에서 하느님으로서의 기적을 행하여 내가 십자가에서 내려왔더라면, 확실히 말하지만 내가 흘린 피로 죄들을 깨끗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원죄는 깨끗이 씻지 못했을 것이다. 원죄를 위하여서는 전적인 소모가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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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