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간 토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바른 목적을 위해 바른 방향으로 삶을 정돈합시다!~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11월 7일 금요일- 마흔다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산상 수훈을 살아내기
"일어나라, 나아가라, 행동하라, 움직여라."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엘리아스 샤쿠르(Elias Chacour) 대주교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랍계 이스라엘인이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활동한 멜카이트 그리스 가톨릭 교회의 전임 대주교입니다. 사목 활동 중 어느 시점에서, 그는 갈릴래아 지역 공동체의 청소년들을 위한 중등 교육기관을 설립하고자 지역 당국의 지시를 거스르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 사명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완수되었으며, 그는 이를 위해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진복팔단의 가르침을 깊이 묵상하고 실천함으로써 영적 힘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언어였던 아람어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저의 통찰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성경은 여러 번의 번역을 거친 결과물이기에, 때로는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거나 흐려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진복팔단의 말씀을 흔히 수동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복되어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복되어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복되어라, 영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복되어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성경의 희랍어 신약 성경에서 사용된 "마카리오이(makarioi)"는 일반적으로 "복되다"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본래 언어인 아람어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 원어는 "아슈라이(ashray)"이며 이는 동사 "야샤르(yashar)"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 아람어 표현은 수동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오히려 "올바른 목적을 향해 바른 길로 나아가다", "회개하다", "곧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다"라는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령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박해받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 "슬퍼하는 이들은 복되니,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또는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은 복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저와 제 하느님 모두 자기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분노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정당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아람어로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저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일어나십시오, 나아가십시오, 행동하십시오, 움직이십시오 — 정의에 목마르고 굶주리는 여러분, 하느님의 정의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일어나십시오, 나아가십시오, 행동하십시오, 움직이십시오 — 평화를 이루는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해석이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훨씬 더 충실하게 반영한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손을 더럽히더라도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 헌신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가난하고 말 없는 이들, 힘없는 이들이 고통받고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수동적인 신앙이 아니라, 절망을 넘어서는 능동적이고 활기찬 생명의 여정입니다.
"일어나라, 나아가라, 행동하라, 움직여라."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그 중등 교육을 위한 학교는 수많은 장애와 어려움 속에서도 완공되었고, 수도와 전기 사용에 대한 공식 허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굳건히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죄책감은 제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저의 일반적인 감정 상태였습니다. 살아오면서 어느 순간, 죄책감이 곧 겸손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그러나 이 묵상들을 통해, 나는 하느님의 눈으로 저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은 하느님의 자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었고, 자애로우신 하느님께 더욱 의지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조금씩 교만을 내려놓고, 참된 저 자신—자비롭고 사랑이 넘치는 창조주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음 받은 여성—으로 저를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Mary P.
References
Elias Chacour with Mary E. Jensen, We Belong to the Land: The Story of a Palestinian Israeli Who Lives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HarperSanFrancisco, 1990), 143–144.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Rachel Spina, untitled (detail), 2023,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한 여인이 아이가 꽃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그들 모두가 작고 연약한 것을 알아보고 존중함으로써 진복팔단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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