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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대림 1주간 토요일 / 송영진 신부 ~

<대림 제1주간 토요일 강론> (2025. 12. 6. 토)(마태 9,35-10,1.6-8)


복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5─10,1.6-8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예수님께서 가엾게 여기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1) 예수님께서 가엾게 여기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려고 ‘나’에게 오신 ‘나의 목자’이신 분입니다.


‘내가’ 성탄절을 잘 맞이하려고 이렇게 대림시기를 지내는 것은, 성탄절이 ‘나를’ 위해서 ‘하느님이시며 메시아이신 분’이 세상에 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즉 구세주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허약한 이’ 라는 것과 “목자 없는 양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이” 라는 것과 ‘길 잃은 양’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가엾게 여겨야 한다는 말만 한다면,


또 “나는 지금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 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교만하고 어리석은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는 아무도 자기 자신을 남보다 ‘위에’ 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 앞에서 똑같은 처지에 있는 ‘구원의 대상’일 뿐입니다.


복음 선포도, 사랑 실천도, ‘같은 처지’에 있는 ‘같은 죄인’으로서 ‘함께’ 가기 위해 노력하는 일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복음을 듣거나 조금 늦게 듣거나, 조금 먼저 믿거나 조금 늦게 믿었다는 차이는 있지만, 그 ‘먼저’ 라는 것이 ‘위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남보다 더 나을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람들과 성직자들, 수도자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입니다.>

2)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말의 표현만 보면, 예수님께서 군중의 처지를 모르고 계시다가 군중을 보신 다음에야 가엾은 마음이 드신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아니고,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인간들을 가엾게 여기셨고, 그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인류는 그곳으로 되돌아갈 길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메시아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그 길’을 알려 주셨고, ‘그곳’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앞장서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이라는 말은, ‘목자가 있는데도 마치 목자가 없는 양들처럼’이라는 뜻입니다.
<스스로 목자를 떠났거나 잊어버린 사람도 있고, 목자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든 목자가 없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다.” 라는 말은, ‘구원의 길’을 모르는 채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고,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의 전체 인류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3)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라는 말씀은, 여기서는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데도 믿고 회개하는 사람이 적다.” 라고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일꾼’이라는 말은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그 일꾼이 아니라,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신앙인은 하느님의 자녀이고, 자녀는 아버지의 일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모든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 건설 사업에 동참하는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말씀은, “더 많은 사람이 믿고 회개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청하여라.’, 즉 ‘기도하여라.’입니다. 복음 선포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해야 하고, 그래서 ‘기도하면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4)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라는 말씀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 먼저 가라.” 라는 뜻입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하늘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이고, 이 말씀은 사실상 “회개하여라.”입니다.


제자들이 병자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을 한 것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한 것입니다. <치유의 은총을 받는 사람들은 그 은총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게 됩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이 모든 일이 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