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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대림 1주간 토요일 / 전삼용 신부 ~

2025년 12월 6일 가해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마태오 9,35-10,1.6-8)


복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5─10,1.6-8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https://youtu.be/SBFsbPyDKWY?si=90uAxwtGAlTJZ1hg


 


교회를 망치는 순교자 콤플렉스

7세기 이전, 북아프리카 교회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키프리아노 같은 위대한 교부들을 배출한 가톨릭 신학의 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곳의 교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스크만 남았습니다. 왜 그 찬란했던 교회는 멸망했을까요? 치명적인 실수는 바로 '독점'이었습니다.

당시 교회 지도층은 로마에서 온 라틴어 사용자들끼리만 사제직을 독점했고, 현지인인 베르베르족을 사제로 키우는 데 인색했습니다. "저들은 무식해서 안 돼"라는 엘리트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슬람 군대가 쳐들어와 라틴 사제들을 추방하자, 목자를 잃은 양들은 순식간에 이슬람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반면 토착민 사제를 열심히 키웠던 이집트 콥트 교회는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 엘리트주의는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이러한 비극은 세속 역사에서도 반복됩니다.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33세에 요절하며 "제국을 누구에게 물려주겠느냐?"는 질문에 "가장 강한 자에게"라는 무책임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는 정복자였을지 몰라도, 백성을 책임지는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권력을 나눌 2인자를 키우지 않았기에, 제국은 그의 죽음과 동시에 장군들의 내전으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점욕은 결국 자신이 쌓은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흔히 "본당에 봉사자가 없다,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순교자 콤플렉스(Martyr Complex)'라는 용어를 씁니다. 입으로는 "나만 고생한다, 힘들어 죽겠다"고 불평하지만, 막상 누군가 도와주려 하면 "당신은 이 일을 몰라"라며 거절하고 일을 움켜쥐는 심리입니다.



이들은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나 없으면 조직이 안 돌아간다'는 그 비장미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그 자리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전능하시지만 혼자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당신이 가진 '마귀를 쫓고 병을 고치는 권한'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나만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너희도 가서 하라"며 파견하셨습니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가 자신을 넘어서기를 바라고, 참된 목자는 양 떼 속에서 또 다른 목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 내 자리를 대신할까 봐 두려워하거나 후배 양성에 소홀하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라 경쟁자를 죽였던 헤로데의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그는 기술자가 아니었지만 당대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기, 자신보다 더 우수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았던 사람이 눕다."



그는 일꾼을 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들이 자신보다 뛰어난 것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 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더 나은 일꾼을 세울 때, 하느님의 사업은 더욱 번창합니다.

구약의 엘리야 예언자도 한때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는 저 혼자만 남았습니다" 라고 하느님께 불평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열정이 아니라 영웅주의적 고독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이 있다.



가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로 세워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느님의 해결책은 엘리야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짐을 나누어 질 후계자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짊어지고 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중세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의사들이 다 죽거나 도망쳐 치료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교황 클레멘스 6세는 일반인들도 임종을 지키고 고해를 들을 수 있도록 파격적으로 허락했습니다. 밭이 썩어가고 영혼들이 죽어가는데 "자격증이 있느냐"를 따지며 기득권을 지킬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성소자 가뭄이라는 흑사병을 앓고 있습니다. "사제가 없다, 수녀가 없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성소 발굴을 위해 뛰고 평신도 리더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주님께서는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일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나 혼자 영광을 독점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진심으로 내 짐을 나누어 질 형제를 보내 달라고 기도합시다.

후계자가 끊긴 제단에는 잡초만 자랄 뿐이지만, 일꾼을 키우는 교회에는 영원한 생명이 자라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제자들을 뽑으셨던 예수님의 모습대로 자신의 일을 이일 일꾼을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아멘.

-  전삼용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