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간 수요일 강론>(2025. 12. 10. 수)(마태 11,28-30)
복음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님의 ‘참안식’은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받게 됩니다.』
1) 여기서 ‘고생’과 ‘무거운 짐’은, 좁은 뜻으로는 유대교의 율법들을 뜻하고, 넓은 뜻으로는 ‘인생살이’를 뜻합니다.
‘너희’는 ‘모든 사람’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모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이고, “나에게 오너라.”는 “나에게만 오너라.”입니다. 진정한 안식, 평화, 구원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이신 분’으로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입니다.
이 말씀의 ‘안식’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서 얻기를 바라는 구원, 생명, 평화, 기쁨, 행복 등이 모두 총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내가 너희를 구원하겠다.”입니다. 여기서 “오너라.”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입니다. “오너라.”는 우리 쪽에서 ‘능동적인 응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지만, 받기를 원하고,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 받게 됩니다.
2) 정말로 겸손한 이는 자기 입으로 “나는 겸손하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하려고 마태오 사도가 덧붙인 말로 해석합니다.
어떻든 이 말은, 예수님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분이 아니라, ‘섬기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예수님께서 주시는 해방과 안식은 ‘섬기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 ‘참안식’을 주시는 일 자체가 ‘사랑’입니다.>
여기서 ‘내 멍에’ 라는 말과 ‘내 짐’이라는 말은 ‘반어법적 표현’이고,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을 뜻합니다.
<주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은 결코 멍에와 짐이 아닙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는, “나를 믿고, 나의 가르침들을 실천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은 온갖 억압과 압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열쇠’이고, 우리에게 참된 안식과 평화를 주는 ‘특효약’입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을 ‘멍에’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오해하는 사람이고,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멍에를 ‘없애려고’ 오신 분이지 당신의 멍에를 ‘새로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아무리 가벼워도 멍에는 멍에일 뿐이고, 멍에가 있는 한 참된 안식은 없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앞의 안식을 주겠다는 당신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신 말씀이고, 우리 쪽의 응답과 노력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서는 ‘그러면’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즉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을 실천하면’, 참안식을 얻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즉 계명들과 가르침들을 실천하지 않으면, 참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3)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라는 말씀은, “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은 너희의 멍에와 짐을 없애는 ‘편안함’이고 ‘가벼움’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계명들과 가르침들을 실천하면, 모든 멍에와 짐에서 해방되고, 편안함과 가벼움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판공성사(고해성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보는 일이 ‘멍에’인가? 실제로 고해성사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회개를 하지 않거나 제대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멍에’와 ‘멍에를 없애는 열쇠’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은 ‘영혼의 자유와 평화와 가벼움과 기쁨’을 체험합니다.
4) 루카복음 13장에 있는, ‘등 굽은 여자를 안식일에 고쳐 주신 이야기’는, ‘멍에를 없애 주시는 예수님’을 잘 나타냅니다(루카 13,10-13).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회당장은,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셨다고 화를 냅니다(루카 13,14). 여자는 예수님 덕분에 ‘병마’ 라는 ‘멍에’에서 해방되었는데, 회당장은 안식일 율법이라는 ‘멍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벳자타 못 가의 병자’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던 그를 병마에서 해방시켜 주셨는데(요한 5,5-9), 그는 병이 치유되었다는 기쁨보다 안식일 율법을 어긴 것 때문에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요한 5,15). 그 모습이 바로 ‘멍에’에 짓눌려 있는 모습입니다.
<멍에의 종류가 무엇이든지 간에, 멍에를 벗어버리는 방법은, 스스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을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것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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