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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 조재형 신부 ~

 
 2026년 4월 9일 (백)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제1독서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3,11-26
그 무렵 치유받은 불구자가 11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온 백성이 크게 경탄하며 ‘솔로몬 주랑’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12 베드로는 백성을 보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6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20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21 물론 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예로부터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합니다.
22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야 한다.
23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24 그리고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 말씀을 전한 모든 예언자도
지금의 이때를 예고하였습니다.
25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고,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희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어 주신 계약의 자손입니다.
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의 매일 묵상 체험


† 찬미예수님


사제가 되었을 때입니다. 부활 대축일이 지나면 ‘엠마오’라는 휴식의 시간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순 시기와 성삼일을 지내면서 성직자와 수도자가 수고했으니 며칠 쉬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똑똑한 신부님들이 ‘엠마오’라는 걸 생각했습니다. 


루가복음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의 이야기에서 명분을 찾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보았던 제자 둘이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제자 둘은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몰랐습니다. 어쩌면 실망과 절망의 마음을 가지고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니 엠마오로 가던 제자는 사순 시기를 지낸 것도 아니고, 성삼일을 지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다시 고기를 잡으려고 갈릴래아 호수로 갔던 것처럼, 제자 둘도 자기들이 살던 고향으로 갔을 뿐입니다. 그래서 부활 대축일 지내고 며칠 휴가를 가는 ‘엠마오’는 사실 성서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오히려 부활 대축일 이후 ‘부활 팔일 축제’를 통해서 부활의 기쁨을 더욱 성대하게 지내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교구는 사제들이 지내는 ‘엠마오’의 관행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교구는 그런 관행이 교회의 정신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공문을 보내서 ‘엠마오’ 휴가를 자제하도록 하였습니다. 


휴가를 가더라도 부할 팔일 축제를 마친 후에 가도록 하였습니다. 3년 전에 달라스에 왔을 때입니다. 부활 대축일 이후에 ‘엠마오’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해는 성당 문을 닫았습니다. 작년 부활 대축일 이후에도 ‘엠마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성당 문을 열겠다고 하였습니다. 교우들이 다른 성당에서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우리 집을 두고 다른 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부활 대축일 이후에도 작년처럼 성당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관행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먼저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의 관행도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금식하고,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위선이라고 하셨습니다. 겉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나라들은 ‘평화’와 ‘안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갈등이 깊어질수록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도 커집니다. 힘의 논리는 빠르고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늘 약한 이들의 고통으로 나타납니다. 


복음은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을 들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길을 여셨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사제는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세상의 기준입니까? 효율과 편리함의 논리입니까? 아니면 복음입니까? 


우리는 사제가 되면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길을 따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분들은 편리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안전한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복음을 선택했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신앙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저는 때때로 묻습니다. 나는 과연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혹시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논리를 따르려는 것은 아닌가? 편리함을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활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래아로 가라.” 갈릴래아는 권력의 중심이 아닙니다. 갈릴래아는 일상의 자리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부활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죽은 다음에만 일어나는 사건도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두려움을 넘어 용기를 낼 때 부활이 시작됩니다. 


미움을 넘어 용서를 선택할 때 부활이 시작됩니다.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복음을 선택할 때 부활이 시작됩니다. 우리도 묻습니다. 나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세상의 기준인가, 복음의 기준인가?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내는 우리는 아직 축제 한가운데 있습니다. 


부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부활입니다. 갈릴래아로 돌아갑시다. 우리의 가정으로, 일터로, 공동체로 돌아가 회개하고, 용기를 내고, 복음을 전합시다. 주님은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부활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