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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부활 8일 축제 내 금요일 / 전삼용 신부 ~

2026년 4월 10일 가해 부활 8일 축제 내 금요일 (요한 21,1-14)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https://youtu.be/lcTZiAGU31c?si=UZ9CjET5NciD_BKp


 


변덕이 부활 신앙의 증거라고?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다!’라는 말을 듣자, 겉옷을 걸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요한 21,7)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오늘은 부활 팔일 축제의 금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참으로 기묘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밤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한이 "주님이시다!"라고 외치자, 베드로는 갑자기 겉옷을 입습니다.



상식적으로 수영을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입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일을 마쳤는데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말에 그물을 치고, 갑자기 물에 뛰어드는데, 심지어 겉옷을 입고 뛰어듭니다. 도대체 예측을 할 수 없는 행위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 복음은 어쩌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축제에 올라가시지 않겠다고 형제들에게 말씀하셨지만, 나중엔 올라가신 것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올라가실 것이었는데 올라가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러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변덕을 부리신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사람이셨고,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바람이 부는 대로 갑니다.

먼저 베드로가 겉옷을 입은 행위의 영적 의미를 구약의 야곱과 연결해 보아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은 형 에사우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지만,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며 죽음의 공포를 느낍니다. 야곱은 에사우에게 줄 자신의 모든 열매, 곧 아내와 자녀들, 재산을 먼저 보낸 뒤 혼자 남아 밤새 천사와 씨름합니다.



이 씨름은 자신의 자아를 꺾는 '기도'의 상징입니다. 날이 밝자 야곱은 형 앞에 서서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하며 나아갑니다. 야곱은 에사우의 복을 가로챘는데, 그 방법은 에사우의 옷을 입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입습니다. 아담이 가죽옷을 입어야 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옷의 능력이 발휘되려면 본래의 자아는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와 결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의 수영도 이와 결을 같이 합니다. 베드로가 겉옷을 입은 것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발을 씻겨주시며 나누어 주신 그분의 정체성, 즉 '의로움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수영법은 오늘날처럼 물 위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땅에 엎드려 기어가는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즉, 베드로는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 바다 위에서 야곱처럼 '엎드려 절하며'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밤새 잡은 153마리의 물고기, 곧 자신이 구한 하느님의 자녀들을 선물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베드로는 속으로 이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루카 17,10).

이처럼 부활을 믿는 이들은 하느님 앞에서 엎드리는 유연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변덕’이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인들은 ‘자유’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으로 난 사람들은 바람처럼 자유롭습니다. 언제든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 명령할 것을 알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계획을 세우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믿는 것이고 이는 하느님 눈에는 그저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중국에서 일어난 '참새 소탕 작전'입니다.

1958년 중국의 마오쩌둥은 농촌을 시찰하다 참새가 곡식을 까먹는 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지도자의 한 마디는 즉각 '원대한 계획'이 되었습니다. 전 국민이 동원되어 냄비를 두드리고 깃발을 휘둘러 참새가 땅에 내려앉지 못하게 했고, 지쳐서 떨어지는 참새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1년 만에 2억 마리가 넘는 참새가 사라졌습니다.

중국 정부는 곡식 수확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며 자축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얄팍한 계획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참새가 사라지자 참새의 주식이었던 해충과 메뚜기 떼가 천적 없이 창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 전역에는 전무후무한 대기근이 닥쳤고, 무려 3,000만 명에서 4,0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인간의 '완벽해 보이던 계획'이 하느님의 '거대한 생명 시스템'을 무시했을 때,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농담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처럼 고정된 인간의 내비게이션을 비웃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올라가지 않겠다" 하시고는 몰래 올라가시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으러 가자"는 베드로의 계획을 헛수고로 만드신 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명하십니다. 성령의 사람은 이 거룩한 변덕에 즉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거룩한 유연성의 정점을 우리는 콜카타의 성녀 마더 테레사에게서 봅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1928년 로레토 수녀회에 입회하여 20년 동안 안정적인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지리학 교사로서, 나중에는 성 마리아 학교의 교장직까지 맡으며 그녀의 앞날은 보장된 계획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6년 9월 10일, 다질링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속으로 가라"는 '두 번째 부르심'을 듣습니다.

당시 수녀회의 반대는 처절할 정도였습니다. 장상들은 20년이나 헌신한 유능한 수녀를 잃고 싶지 않았고, 고독한 거리로 나가는 것은 수녀회의 규칙과 맞지 않는 미친 짓이라며 가로막았습니다. 그녀는 장장 2년 동안이나 교회의 엄격한 심사와 의구심 섞인 눈초리, 그리고 동료들의 비난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계획은 하느님의 것일 뿐"이라며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교회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철저히 순명했습니다. 마침내 1948년 4월, 비오 12세 교황의 특별 허락을 받고 수녀원 담장을 넘었을 때, 그녀는 어제의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말씀하시는데 어제의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령의 바람은 이처럼 20년의 안락함을 한순간에 뒤엎는 거룩한 변덕을 요구합니다. (출처: 캐서린 스핑크, 『마더 테레사 전기』)

우리 삶에는 '깃발'과 '돛'이라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자기 계획을 믿는 사람은 바람 앞에 선 '깃발'과 같습니다. 깃발은 한쪽 끝이 고정되어 있어 바람이 불면 요란하게 펄럭이지만, 바람이 조금만 강해지면 찢어져 버립니다. 내 고집과 계획에 묶여 있는 사람은 시련이 닥치면 금방 절망하고 원망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돛'과 같습니다. 돛은 돛대에 연결되어 있지만 바람의 방향에 따라 언제든 자신을 조절합니다. 바람이 불면 돛은 찢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을 타고 힘차게 나아갑니다. 교부 성 베르나르두스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영혼은 흐르는 물과 같다.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절벽을 만나면 뛰어내리며, 태양을 만나면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간다. 고여있는 물은 썩지만, 변덕스럽게 흐르는 물은 생명을 낳는다. 그리스도를 입은 이들이여, 그대들의 변덕을 두려워 마라. 그것은 살아계신 주님의 심장 박동에 맞추어 춤추는 것이다." (성 베르나르두스, 『하느님을 사랑함에 관하여』 12, 1).

세상의 계획이라는 배 위에 깃발처럼 펄럭이며 앉아 있지 마십시오.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돛을 올리고, 계획을 수정하고,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헤엄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항상 여러분 주위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전삼용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