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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 조재형 신부 ~

 
2026년 4월 10일 (백)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제1독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4,1-12
그 무렵 불구자가 치유받은 뒤, 1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다.
2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
3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5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6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8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의 매일 묵상 체험


† 찬미예수님


미국에 있으면서 ‘서명자(signer)’란 말을 들었습니다. 신문사에 있을 때도, 달라스 성당에서도 재정과 관련된 서명은 제가 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 발행하는 수표는 모두 제가 사인해야 합니다. 지출하는 용도를 꼼꼼하게 챙겨 보는 편입니다. 대부분은 사무장님이 차질 없이 준비해 주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사인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 발행하는 공문과 서류도 제가 사인해야 합니다. 세례 증명서, 견진 증명서, 혼배 서류도 제가 사인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의 이름으로 많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서명한다는 것은 그 일에 관해서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와 국가도 협정을 맺으면 양국의 국가수반이 서명한 협정서를 교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웅’이란 영화에서도 독립군이 새끼손가락을 잘라 피로 큰 태극기에 서명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에 대한 결의와 각오를, 서명을 통해서 드러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는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법정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판결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법정은 그분을 부활시키셨습니다. 사람들이 버린 돌을 하느님께서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세우셨습니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이 복음의 진리를 세상 이야기로 보여 줍니다. 


억울하게 테러범으로 몰린 아들과, 끝까지 아들의 무죄를 믿었던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네가 결백하다는 것을 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세상은 아들을 죄인으로 규정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믿었습니다. 세상은 침묵했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 신앙의 신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조롱했고, 제자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침묵 속에서 당신 아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부활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안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억울한 순간을 경험합니다. 오해를 받고, 평가받고, 때로는 죄인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사목을 하면서도 저 자신을 돌아보면, 사람들의 판단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잘하려고 했는데 오해를 받기도 하고, 침묵 속에서 홀로 서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럴 때 필요한 것은 세상의 인정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음성입니다. “나는 너를 안다.” 베드로 사도는 사람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이름, 그러나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키신 그 이름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바로 그 이름입니다.
 
영화 속 아버지는 진실이 드러나는 날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아들에게 남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하느님의 구원은 그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이 고백은 배타적인 선언이 아니라, 사랑의 선언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인간의 판결보다 깊고,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오해보다 넓습니다. 사람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듯이, 억울함과 상처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시작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름 안에서 넘어졌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고, 상처 입은 영혼이 온전하게 되며, 두려움에 갇힌 마음이 자유로워집니다. 여러분의 삶 안에도 억울함과 오해가 있습니까? 혹시 사람들의 판단 때문에 마음이 무겁지는 않습니까? 


그때 하느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를 안다. 나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이름 안에 우리의 구원이 있고, 우리의 정의가 있으며,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이것이 신앙인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