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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부활 제 2주간 금요일 / 송영진 신부 ~

<부활 제2주간 금요일 강론>(2026. 4. 17. 금)(요한 6,1-15)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1)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빵의 기적’과 공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빵의 기적’은 같은 기적이지만,

그 일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다르고, 그래서 강조하는 점도 다릅니다.
공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일’로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은 당신의 양들을 먹이시는 ‘착한 목자’이신 분”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나오는 군중은 ‘배고픈 사람들’이 아니고 표징만(기적만) 바라면서 몰려든 사람들입니다(2절). 그래서 ‘빵의 기적’이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을 계시하신 일”로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은 ‘생명의 빵’이신 분”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빵’이라는 말에서 중요한 말은 ‘빵’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뜻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생명이신 분”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요한 14,6).>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 일은, 바로 뒤에 있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에 연결되고, 또 그 다음에 길게 이어지는 ‘생명의 빵에 관한 논쟁’에도 연결됩니다.


사도들은, 군중이 예수님께 임금이 되어 달라고 요청할 때, 그 일에 동참했거나, 아니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하면서 들뜨고 흥분했던 것은 아닐까?

2) 4절의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라는 말은,

“예수님은 새로운 파스카의 빵이시며, 새로운 ‘만나’이신 분”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파스카가 해방을 뜻하기도 하니까, “예수님은 참되고 영원한 ‘해방’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도 암시합니다.>


6절의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처음부터(군중이 모여들 때부터) ‘빵의 기적’을 계획하셨다는 뜻입니다.


7절의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과 9절의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는 말은,
“이 군중을 먹이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천 명이 넘는 군중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빵과 물고기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원래 하느님의 기적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실 때, 인간들 쪽에서는 그것을 받아먹기만 했을 뿐입니다. 기적의 재료를 하느님께 바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었어도 어떻게든 기적을 일으키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빵과 물고기는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사랑과 나눔을 설명하기 위한 소재로 삼을 수는 있지만, 여기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3) 14절의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는 모세가 약속했던 예언자입니다(신명 18,15).

유대인들은 그 예언자를 메시아로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는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일은, 사는 것이 고달픈 사람들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긴 한데, 그들이 원한 것은 ‘구원’이 아니라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습니다.


즉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만 바라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시면, 힘들게 노동을 하지 않아도 날마다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어떻든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요청을 거절하신 이유는 뒤의 27절에 나옵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