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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부활 제 4주간 토요일 / 송영진 신부 ~

<부활 제4주간 토요일 강론>(2026. 5. 2. 토)(요한 14,7-14)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다음 말씀들에 연결됩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콜로 1,15-16ㄱ).”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 1,2ㄴ-3).”

 

‘예수님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말은,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이는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2.16ㄴㄷ).”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가운데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과 같고, 예수님을 보는 것은 곧 하느님을 뵙는 것이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 말들은 결국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다.”가 됩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뵙고 싶으면 예수님을 보면 됩니다.

<예수님의 초상화나 사진 같은 것을 보고 하느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과 말씀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외모는 중요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말씀이 중요합니다.>

2) “하느님이신 분이 왜 사람이 되셨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히브 2,16-18).”

 

인간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데리고 가려고 인간들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에서, ‘사랑이란, 내려가 주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3)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는,

“내가 승천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너희가 일해야 한다. 너희는 내가 갔던 곳보다 더 먼 곳까지 가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입니다.

 

여기서 ‘더 큰 일’이라는 말은, ‘

더 위대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더 먼 곳까지 가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이신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약속입니다. 또는 ‘하느님이신 분’이기 때문에 하시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기도 하고, ‘예수님께’ 기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에(요한 10,30),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과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은 ‘같은 일’입니다.

 

또 아버지께서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과 예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도 ‘같은 일’입니다. 기도문의 내용에 따라 아버지와 예수님을 구분할 때가 있긴 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는,

“앞으로 너희가 하게 될 일은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들어 주겠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