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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조재형 신부 ~

 2026년 5월 2일 토요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3,44-52
44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45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46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47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50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51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의 매일 묵상 체험


† 찬미예수님


어릴 때의 일입니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다가 다투게 되었습니다. 
덩치가 큰 친구는 제 목을 잡았고, 체구가 작았던 저는 친구의 급소를 잡았습니다. 서로 놓으라고 울면서 버티다가 결국 힘이 빠져 손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습니다. 어렸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서로 붙잡고 있으면 고통이 계속되고, 손을 놓으면 평화가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목을 붙잡고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한다고 했습니다. 이란의 정권을 교체한다고 했습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 능력을 없앤다고 했습니다. 


작년과 달리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즉각적으로 반격했습니다. 미국이 이란의 군사시설을 공격하면, 이란은 미국의 군사 기지를 공격합니다. 미국이 이란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면, 이란은 주변국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하면 이란은 이스라엘의 핵 시설을 공격합니다.
 
어린 시절 저와 친구는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금세 평화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은 어찌 그런 이치를 모르고 서로서로 파국으로 몰아가는 행위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단순히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의 에너지인 석유 공급이 무너지면 세계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역사의 시계를 돌려보면 지금의 갈등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란과 미국의 관계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란은 미국과 매우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의 산업과 정유 시설은 미국과 서방의 도움으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2015년에는 핵 협상이 이루어지면서 갈등을 넘어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도 열렸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와 불신이 쌓이면서 그 관계는 다시 긴장과 대립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서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전신인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는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해 주었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키루스를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라고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에스더는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어 자기 민족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 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은 에스더의 청을 받아들여 유다인을 살리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성서 안에서 페르시아, 곧 오늘의 이란은 이스라엘을 살린 나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그 이유를 인간의 마음 안에서 찾으십니다. 


교황님은 사제들과 신앙인들이 빠질 수 있는 세 가지 유혹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영적 세속성’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을 추구하는 유혹입니다. 희생 없이 승리만을 원할 때 우리는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둘째는 ‘숫자에 의존하는 실용주의’입니다. 사람을 숫자로 환산하는 유혹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더 낫다”라는 가야파의 논리가 오늘도 반복됩니다. 
셋째는 ‘기능주의’입니다. 하느님의 뜻보다 효율과 계획을 앞세우는 유혹입니다. 기도보다 전략이 앞서고, 믿음보다 계산이 앞설 때 우리는 결국 하느님을 놓치게 됩니다. 


이 유혹에 대해 본회퍼 목사님도 깊이 경고했습니다. 목사님은 ‘값싼 은혜’를 이야기하며, 십자가 없는 은혜, 회개 없는 용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신앙은 참된 은혜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마저도 자기 편의대로 바꾸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이 모든 유혹의 결과는 하나입니다.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혹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진리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생각과 자기 기준에 갇혀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아직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안의 유혹 때문입니다. 


이제 신앙 안에서 다시 배워야 합니다. 
욕심을 놓고, 미움을 놓고, 자기 확신을 내려놓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