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러 신부들의 말씀

~ 부활 제 6주일 / 정인준 신부 ~

부활 제6주일


제1독서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8,5-8.14-17
그 무렵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냈다.
15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16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17 그때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8,5-8.14-17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3,15-18
사랑하는 여러분, 15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16 그러나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선한 처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여러분을 중상하는 바로 그 일로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17 하느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보다 낫습니다.
18 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샬롬 shalom שׁלום "


우리도 이제는 샬롬이라는 말이 평화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평화는 주님께서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인사말로 하신 단어입니다.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존경하는 스승과 사랑하는
제자 사이에 죽음이라는 이별이 있은 후에 다시 만났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리에서 이 평화의 단어를 쓰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에는 단순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별 후에 반가움, 기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난 평온, 안심이라는 심리 상태를 말할 수 있을까요?
이제 주님을 잃어버리고 다시 만났으니 그동안 제자들을 덮고 있던 슬픔, 고통, 불안,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평화는 또 다른 표현으로는 이제까지 체험할 수 없는 ‘새로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는 과거의 제자들에게 물을 수 있는 비겁함, 배신 등등이
아닌 주님의 넓고 깊은 용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과거의 혼란이나 실망, 심지어는 당신을 버리고 흔들리는
도망을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바로 이 ‘평화’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사실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이렇게 혼난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평화는 거저 주는 그야말로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힘든 것, 때로는 주저앉고 싶은 순간을 넘기고 나서야 참다운 평화의 순간을
맛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평화의
인사는 제자들에게는 더욱 특별하고 기쁨이 바탕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참 어려운 순간이나 사람을 체험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내가 사람을 골라서 만나는 것 같아도 사실은 피할 수 없는,
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사람 만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쁠 때는 말 할 수 없지만, 고통스러울 때는 말 그대로
지겹고 고통스러운 것이지요. 때로는 피하고 싶고 안 만나고 싶어도 딱딱 붙는 껌처럼,
옛날 우리 표현대로라면 ‘찰거머리’처럼 떼지도 못하고 살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한번은 한 교우가 자기는 자기 직장의 상사가 너무 꼴 보기 싫어서 그 직장을 떠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생기기도 너무 못생긴데다가 목소리까지 그리고 하는 짓 어느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데 사사건건이 자기를 ‘이런 표현하면 안되는데...’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사표를 써야하는데 대학 다니는 둘째와 막내가 있어서 죽지 못해서
직장에 나갔습니다. 자기가 너무 힘들어서 점심식사 후에 직장 부근의 성당에 가서
성체 앞에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주님, 그 지겨운 사람, 아프지도 않습니다. 아니 휴가라도 많이 내서 아주 오래
있지도 않습니다....’등등의 푸념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도 나아지는 것도 없고...


다른 방법은 없고 그래도 성체 앞에서 그 사람 욕도하고 오면 좀 나은 것 같아 그
렇게 하기를 일 년을 넘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원수도 외나무 다리’라고 점심 시간에 일을 하다보니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하고 그 꼴보기 싫은 상사에 남았는데 ‘점심이나 같이 하자.’라고 하더랍니다.


꼭 지옥 같은 분위기여서 무슨 핑계를 대야하는데 댈게 없어서 마지못해서 ‘그러지요’라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고 거의 거의 끌려가다시피 식당에 갔다고 합니다.


밥을 먹다말고 그 상사가 ‘천주교 신자이지요?’라고 말하며 성실하고 진실하다고
칭찬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몇 차례 업무에서 힘들었는데, 우리 신자를 보고
용기를 얻고 몇 차례 그만 두고 싶은 것을 참고 견디었다는 말을 하면서 ‘당신같은
사람이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라는 말을 하는 걱이었습니다.


그 상사는 자신이 때로 성격이 못 되서 ‘소리도 지르고 무시한 것은 너무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우리 신자는 어리둥절해서 ‘이 사람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하면서 혼란스럽게 식사를 마쳤다고 합니다.


그 후에 기적같은 일이 우리 교우에게 일어났습니다. 주위에 친구가 없고 못된 사람으로
평을 받는 그 상사가 불쌍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차차 그 상사와는 서로 믿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교우는 그를 용서하고 이해하기까지는 ‘일 년이라는 지옥 같은 시기’가 있었다고
하면서 ‘주님의 평화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닌가 봐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꼭 이 교우의 이야기와 같지는 않지만 우리도 때로 나를 힘들게 하는
꼴보기 싫은 이웃을 이해하는데, 용서하는데,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평화를 얻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지나가야 하나봅니다. 그 교우말대로 거저 얻는 주님의 평화는 없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이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십니다.
어리석은 우리가 너무 늦게 깨닫고 용서하기에는 너무 더디고 때로는 옹졸한 벽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극복하기가 어렵겠지요?


성령께서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영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때로
얻기 힘든 주님의 평화로 채워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지킬 수 있도록
그래서 주님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요한 14,2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인준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