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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토요일 강론>(2026. 5. 16. 토)(요한 16,23ㄴ-28)
복음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23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1) 예수님께서는 앞의 14장에서, 당신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당신이 이루어 주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14).” 그런데 이제 16장에서는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는 ‘다른 말씀’으로 보이지만, ‘같은 말씀’입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요한 10,30).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그분의 신앙인으로서 청한다는 뜻입니다. ‘청하다.’는 ‘구원을 청하다.’입니다. <물론 어떤 소원을 비는 것도 포함됩니다.> 14장의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겠다.”이고, 16장의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다.”는 “아버지께서 구원하실 것이다.”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표현하든지 아버지께서 구원하신다고 표현하든지 간에 어떻든 ‘같은 구원’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또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모든 권한’을 받아서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내 이름으로 청하여라.”를 강조하시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당신의 주권과 신성을 선언하신, 즉 당신이 하느님과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선언하신 말씀이기도 하고, 삼위일체를 암시하신 말씀이기도 하고,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신앙에 연결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부활 전에는, 사도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메시아이신 분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부활 후에는,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믿음에 도달했습니다(요한 20,28).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 머리글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8).” “예수님은,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며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증언과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 주신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고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증언은, 삼위일체 신앙을 전제로 한 증언입니다. 삼위일체를 안 믿는 사람들은 이 증언들을 말장난으로 생각할 텐데,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나타내는 단순하고 명확한 증언입니다.> 2)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라는 말씀은, “너희가 구원받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24절의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라는 말씀은, 부활 전에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신앙이 없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26절의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부활 후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그동안 예수님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하고, 예수님 부활 후에는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을 갖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는, 메시아의 육화 강생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는 예수님의 승천을 가리키는 말씀이고, 동시에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아버지께 가는 일’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3) ‘예수님은 하느님’이라고 믿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죄를 대신 속죄하려고 당신의 목숨을 속죄 제물로 내주셨다.”가 십자가에 대한 신앙이고, 그 십자가는 곧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드러난 사랑을 모르면 하느님을 알 수도 없고, 하느님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 혹시라도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안 믿어도, 그냥 하느님만 잘 믿으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가 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요한 3,1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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