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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2026. 5. 24.)(요한 20,19-23)
복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성령을 받아라.” - 받으려고 하는 사람만 받게 됩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을 주는 일부터 하신 것은, 그들이 온 세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47-49).” 이 말씀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고(구원받는다고)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여라.”입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을 주신 다음에 곧바로 ‘용서의 권한’을 주신 일”은, 루카복음에 있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 라는 말에 연결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선포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대리해서 사람들의 죄를 실제로 용서하는 일을 하는 것까지 사도들의 임무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용서의 권한’을 주신 일은, 단순히 권한만 주신 일이 아니라 실제로는 ‘직무’, 또는 ‘임무’를 맡기신 일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는, ‘용서하지 않을 권한’을 주신 말씀이 아니라, “용서받지 못한 채로 남아 있게 하지 마라.”로 해석됩니다. 죄를 용서하는 일은 예수님을 대리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뜻’에 합당하게, ‘예수님의 뜻’에 따라서 수행해야 하는 일이고, 권한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면 안 되고, 직무유기나 직무태만도 안 됩니다. 사도들이 받은 ‘고해성사의 권한과 직무’는 주교들에게 계승되었고, 신부들은 교구장 주교로부터 그 권한과 직무를 위임받아서 수행합니다.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 쪽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고해성사는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주신 특별한 은총입니다.> 2)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나서 곧바로 ‘용서’를 말씀하신 것을, 그 당시의 교회 공동체의 내부 상황에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직후에 공동체의 내부 분위기는 몹시 안 좋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배반자 유다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사도들이 잘못한 일들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고,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공동체의 일치가 아주 많이 깨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런 공동체의 일치를 회복시켜 주는 일부터 하셨을 것입니다. <성령은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이고, 일치는 사랑, 용서, 화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용서하려고 노력하면, 일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지만, 만일에 용서하기를 거부하면? 그것은 성령의 도움을 거부하는 것이고, 일치를 이루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3) 오순절 날 ‘성령 강림’의 가장 큰 ‘수혜자’는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사도 2,41),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날 일어난 일을 잘 모릅니다. 사도들이 배운 적 없는 외국어를 갑자기 말할 수 있게 된 것인지, 그렇게 되었다면 그 능력은 그날만 있었는지, 그 후에도 있었는지,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도들 쪽이 아니라, 사도들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들 쪽입니다. 창세기에 있는 바벨탑 이야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말을 뒤섞어 놓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흩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창세 11,7-9), 실제로는 이기심과 욕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닫히고, 멀어지고...... 마음이 멀어지면서 말도 멀어졌을 것입니다. 성령 강림 때의 상황을 보면, 열린 마음으로 사도들의 말을 들으려고 한 사람들은 말을 알아들었고, 믿었고, 회개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열자 성령께서 그들의 귀를 열어 주셨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사도들의 말을 알아듣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고, “새 포도주에 취했군.” 하면서 비웃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사도 2,13). 그들은 안 들으려고 해서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만능 해결사도 아니고, 자동 기계 장치도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성령께서 알아서 다 해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성령에 사로잡혀서 로봇처럼 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사람들 앞에 섰고, 자신들의 믿음을 ‘능동적으로’ 증언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렇게 스스로 노력한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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