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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연중 제 13주간 화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 ~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

CAC 매일묵상

은총은 언제나 하느님 쪽에서부터 비롯됩니다.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호명환 번역)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친밀한 일치와 거룩한 통교를 이루시려는 끊임없는 갈망을 드러내십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모든 이는 이미 선택되었습니다.

은총은 언제나 하느님 쪽에서부터 비롯됩니다.

2026년 6월 29일 월요일

리처드 신부는 하느님께서 유다 백성과 맺으신 계약을 가리키며, 선택은 전적으로 하느님 편에 달려 있고 우리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히브리 성경에서 처음으로 은총의 개념을 "선택" 혹은 "뽑힘"을 통해 만나게 됩니다. 이 선택은 결국 "계약의 사랑(covenant love)"이라 불리게 되는데, 이는 상호적인 주고받음으로 성숙해 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언제나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 백성, 곧 옛 이스라엘을 향해 시작하시는 것이며, 그들은 점차 그 사랑을 신뢰하고 응답하는 법을 배워 갑니다. 성경 전체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친밀한 일치와 신적 일치를 향한 끊임없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이를 위해서는 양쪽 사이에 어느 정도의 합치, 유사성, 혹은 "같음"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는 자신을 찾고자 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조금은 심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심어진 은총"의 메시지를 분명히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과 하나임을 인식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 안에서 행하시고, 아시며, 사랑하시고, 치유하시며, 봉사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가장 깊은 정체성을 온전히 신뢰하시며 결코 의심하지 않으셨는데, 이것이 바로 그분의 독특한 "신적 아들됨"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의 참된 정체성과 우리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의심하거나 부인하고 거부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거나 만들어내거나 얻은 것이 아니기에 믿기 어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설명할 수 없는 무상의 선물이 은총의 본질이며, 우리가 그것을 신뢰하기 두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언제나 하느님을 찾고 아십니다. "같은 것은 같은 것을 알아본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 창조 이전부터 서로를 위해 지어졌습니다(에페소서 1,4–6). 어쩌면 궁극적인 은총은 모든 것이 처음부터 은총임을 깨닫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은총임을 알아보는 것 자체가 이미 은총입니다. [1]

하느님께서는 옛 히브리 백성이나 다른 누구라도 그들이 선하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롭고 의도적인 선택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일은 결코 "자격 경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의 모든 이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리입니다. 결국 은총은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온전한 내어 맡김" 혹은 "항복"의 행위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만한 이들은 마리아께서 노래하신 대로 "그들의 왕좌에서 끌어내려질 때"(루카 1,52)까지는 좀처럼 굴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분법적이고, 판단하고, 경쟁하며, 비교하는 사고방식 안에서는 이 진리가 잘 계산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하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한한 선의 원천을 받아들임으로써 선해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는 그저 받는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내 삶에 대해 "선제적인 권한을 지니신 분"이시고, '나'는 때때로 미온적인 응답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겨자씨만 한 '나'의 응답조차도 겸손하신 하느님께는 충분합니다. 비록 그 겨자씨가 '모든 씨앗 가운데 가장 작은 것'(마태 13,32)일지라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을 사용하시어 우리의 자유를 더욱 넓혀 주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계약의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강요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당신과 더 깊은 친밀한 일치를 갈망하도록 그 갈망 자체를 심어 주십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복되시고 거룩하신 삼위일체시여, 저희 마음 안에 당신 사랑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시고, 저희 정신을 당신 진리의 지혜로 밝혀주시며, 저희 영혼이 삶과 영과 사랑 안에서 당신의 거룩한 길을 따르게 하소서.

— Mark W.

References

[1] Adapted from Richard Rohr, “Implanted Desire Is Our Deepest Identity,” Daily Meditation, May 25, 2017.

Adapted from Richard Rohr, Things Hidden: Scripture as Spirituality (Franciscan Media, 2022), 176–178.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Credits: Tony Sebastian, untitled (detail), 2019, photo, India,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마치 여러 가지 꽃으로 엮어진 꽃다발처럼,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존재로 온유하게 품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