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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영성이야기

~ 신유학 완성으로 중국 사상 대통합 주자 / 본명은 주희 호는 회암 ~



 

신유학 완성으로 중국사상 대통합 주자(朱子)
본명은 주희·호는 회암

신유학 완성으로 중국사상 대통합
유학사상에 불교·도교·선불교 유기적 통합
주자의 수양론 종교성 가미된 철학 이상의 것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주자(朱子)의 본명은 주희(朱熹)였다. 여러 가지 호가 있었지만 주로 회암(晦庵)이라 불렸다.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신유학이 정호·정이 형제에 의해 본 궤도에 올랐다고 하면 주자는 이를 실질적으로 완성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이론을 섭렵하고 이를 거대한 체계로 집대성한 대학자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완성한 이학(理學)계통의 신유학을 정주학(程朱學), 혹은 주자학(朱子學)이라고까지 한다. 1313년 원 나라 때부터 1905년 청대 말까지 중국에서 과거시험을 보는 모든 사람은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주석한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注)』를 공식적인 교과서로 삼고 공부하였다.

주자의 학문적 영향력은 중국이 근세에 서양 철학을 받아들이기까지 중국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사상체계였다. 한국에서도 조선조는 ‘주자학’을 공식적인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주자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주자가훈(朱子家訓)』은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본에서도 주자학은 도꾸가와(德川) 막부 시대 공식적 지배이념이 되었다. 실로 동아시아에서의 그의 위치가 어떠하였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의 저작은 방대하여, 70여 가지에, 460권의 분량이었다. 주희는 흔히 기독교 스콜라 신학의 최고봉을 이룬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나 이슬람 수피의 대가 알 가잘리(Al-Ghazali, 1058-1111)에 대비되기도 한다.

주자는 정이가 죽은 지 23년 후, 그리고 송이 금나라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진 뒤 3년 후인 1130년, 지금의 복건(福建)성에서 태어나 70세를 일기로 1200년께 세상을 떠났다. 어린 주희는 아홉 살에 『맹자』를 읽고, 병상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논어』를 배웠다. 아버지가 병으로 죽은 후 유언에 따라 세 분의 스승을 모시고 본격적으로 학문에 전념했다. 19세 때 과거를 보았는데, 합격자 330명 중 278등이었다. 그 당시 남송 정권은 금나라와의 강화를 원하고 있었는데 과거 시험에서도 이에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답안은 불이익을 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1세에 관직을 얻어 임관 도중에 아버지의 친구 이연평(李延平)을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때까지 주희는 유학과 선불교를 함께 배우고 있었지만, 이연평의 영향으로 선불교 공부를 버리고 오로지 유학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불교의 가르침이 그의 사상 체계 전반에 걸쳐 크게 영향을 끼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6세부터 이연평의 문하에 들어가 도학의 진수를 전수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학문에 전념하면서도 여러 관직을 맡아 복지사업이나 교육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남강군 지사로 복무하고 있을 때 백록동(白鹿洞) 서원(書院)을 부흥시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 그 한 가지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50세 께 정적의 모략으로 관직에서 완전히 떠나 오로지 연구와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주자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중국 사상의 대통합을 이룬 사상가였다. 정통 유학사상은 물론 불교의 논리체계, 도교의 무극사상, 선불교에서 채용한 정좌(靜坐) 등을 모두 유기적으로 종합하였다. 이런 방대한 사상을 이 짧은 글에서 다룬다는 것이 무리일 수밖에 없지만, 그의 주요 사상을 종교적 관점에서 간략하게 훑어보기로 한다.

조선·일본에 지대한 영향

주자는 정이가 이(理)에 대해 세운 이론을 더욱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理)는 형이상, 기(氣)는 형이하, 이 둘은 분명 별개의 것이지만,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 이 둘은 불리부잡(不離不雜)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논리적으로는 이가 기보다 먼저이므로 이가 없이 기가 있을 수 없지만, 실제적으로는 기가 없이는 이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형이하로서의 기에 형이상으로서의 이가 합쳐질 때 구체적인 사물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또 “기가 운동성을 가지고 있고, 이는 그 규범이나 법칙으로서, 기의 운동에 질서를 준다”고도 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물은 각각 그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특성이 바로 그 사물의 이(理)라는 것이다. 계단의 벽돌은 벽돌의 이를, 의자의 대나무는 대나무의 이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각 사람에게도 사람의 이(理) 혹은 인성(人性)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각각의 사람이 다른 것은 기(氣)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맑은 기를 가진 사람은 맑고 시원한 물에 들어 있는 진주와 같아 성인이 되고, 탁한 기를 가진 사람은 흙탕물에 들어 있는 진주와 같아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고 했다.

주자는 또 이런 각각의 이(理)를 극(極)이라고도 하고, 이런 각각의 이 혹은 극을 아우르는 우주의 궁극 원리로서의 ‘태극(太極)’을 강조했다. 태극은 ‘가장 높고, 가장 신비스럽고, 가장 심원하고, 모든 것을 넘어서는 무엇’으로서 개물에 내재해 있지만 동시에 우주 전체로서 가지고 있는 이의 총합이라 보았다. “모든 개물은 극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곧 이(理)이다. 하늘과 땅과 만물의 이(理)를 연합하고 포용하는 것은 태극이다.”고 했다. 마치 많은 강이나 호수에 비치는 달들이 결국 하늘에 있는 하나의 달을 반사하는 것과 같이 태극은 각각의 사물들에 올곧이 들어 있으면서 동시에 그 사물들에 있는 모든 이의 통합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태극은 모든 이(理)의 이(理), 최고의 이(理), 일리(一理)이다. 이것이 요즘 말로 해서 ‘궁극실재(窮極實在)’인 셈이다.

太極이 궁극적인 실재

주자는 또 심(心) 자체를 성(性)으로 보지 않았다. 심을 성이라고 보면 ‘성즉리(性卽理)’의 원칙에 따라 심은 이로만 되어야만 하지만, 심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와 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심을 성이나 이 자체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심은 구체적이고 성은 추상적이다. 심에는 생각이나 감정 등의 활동이 있을 수 있지만, 성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 구별은 매우 중요하다. 육상산과 왕양명으로 대표되는 심학파에서는 ‘심이 곧 성’이라고 하여 심을 궁구하는 것이 이를 궁구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주자 사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수양론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종교적 경향성을 옅볼 수 있고, 이것으로 우리는 신유학이 단순히 철학체계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주자는, 정이와 마찬가지로, 『대학』에 나오는 ‘격물(格物, 사물을 궁구함)’을 각각의 사물에 있는 이(理)를 찾는 것이라 보았다. 단 정이가 ‘궁(窮)’하라고 한 것에 비해 주자는 ‘궁진(窮盡)’하라고 했다. 어느 쪽이든 형이하를 통해 형이상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격물궁리(格物窮理)’라는 것이다. 자기 주위에 가까이 있는 것, 그리고 자기에게 특별히 중요한 사물부터 시작하여 그 속에 있는 개별적 이(理)를 궁구하다가 보면 결국에는 홀연히 우주의 궁극적인 이(理)와 내 심성 깊이에 있는 이(理)까지를 알아내게 된다. 이른바 ‘활연관통(豁然貫通)’이다.

“『대학』에 앎을 극대화함이 사물을 궁구함에 있다고 했는데, 앎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이(理)를 궁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지성에 앎이 없지 않고, 천하 사물에 이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아직 이를 끝까지 궁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앎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오랜 동안 노력하다가 보면 결국 어느 날 아침 우리 앞에 완전한 깨달음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모든 사물의 표면과 이면, 정교함과 거침에 이르기까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고, 마음 전체와 그 큰 쓰임이 그대로 완전한 밝음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일컬어 사물을 궁구함(格物)이라 하고, 이것을 일컬어 앎의 지극함(知之至)이라 한다.”(『大學章句』 5장)

格物과 敬 실천하면 깨달아

그러나 격물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격물과 함께, 정이가 지적했듯이, 거경(居敬) 곧 마음을 모으고 챙기는 일을 실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주자는 이를 구체적으로 “몸과 마음을 수렴하고 정제순일(整齊純一)하여 방종(放縱)하지 않는 것이 곧 경이다.”고 하였다. 주자 스스로는 부정하겠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정념(正念, right mindfulness)’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경을 선가에서 쓰는 용어인 ‘성성법(惺惺法)’, 곧 마음을 초롱초롱하게 유지하는 법이라고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튼 이렇게 경을 함께 실천할 때 비로소 목적하던 바 완전한 깨침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편적 원리로서의 이(理)를 깨쳐서 거기에 따라 ‘무리(無理)’하지 않고 ‘순리(順理)’대로 살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고, 이런 사람들이 이루어 내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겠는가? 올바른 격물에서 시작하여 평천하(平天下)가 이룩된다는 이야기이다. 주자학이 공리공론이나 형식에 치우쳐 현실성이 모자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주자학이 근래까지 동양 사회가 보인 후진성이나 병폐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종교적 진수를 재검토해서 긍정적 요소를 발굴하고 이를 오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한 가지 덧붙이면 주자가 지은 것으로 많이 알려진 “젊음은 쉽게 늙어지고 배움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한 치의 광음도 가볍게 여길 수 없네, 연못의 봄 풀 꿈을 깨기도 전에 이미 계단 앞 오동나무 입이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하는 시는 주자의 시문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후대에 누가 지어 주자의 말이라 했을 가능성 있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