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 기경호 신부님 ~



 
10월 4일  성 프란치스코 대축일


집회 50,1.3-7; 갈라 6,14-18; 마태 11,25-30


제1독서
집회 50,1.3-7
1 오니아스의 아들 시몬은 대사제로서 생전에 주님의 집을 수리하고 자기 생애에 성전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기 생애에 저수 동굴을 팠는데 그 웅덩이 둘레는 바다 같았다.
4 시몬은 백성을 멸망에서 구해 낼 방도를 생각하고 포위를 대비하여 도성을 요새로 만들었다.
5 시몬은 백성을 멸망에서 구해 낼 방도를 생각하고 포위를 대비하여 도성을 요새로 만들었다.
6 그는 구름 사이에서 비치는 새벽 별 같고 축제일의 보름달 같았으며
7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전을 비추는 해와 같고 영광의 구름 사이에서 빛나는 무지개와도 같았다.


제2독서
갈라 6,14-18
14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16  이 법칙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내리기를 빕니다.
17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예수님의 낙인을 내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18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마태 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10.4 성 프란치스코 대축일  


사랑의 멍에를 기꺼이 지는 가난한 순례자


오늘 우리는 "제2의 그리스도", "만인의 형제", "관계의 대가", "순례하는 빈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기립니다.
제1독서는 대사제 시몬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는 주님의 집을 수리하고, 자기 생애에 성전을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50,1)


이 말씀대로 시몬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시몬이 성전을 수리하고 도성을 요새로 만들었듯이, 프란치스코 성인은 무너져가던 교회를 영적으로 재건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복음의 삶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반사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거울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11,25)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전도가 실패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무렵 이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시고 구원의지를 드러내시어, 극소수 못난 제자들만이라도 당신의 정체와 하늘나라의 신비들을(13,11) 이해하고 따라준 데 감격해서 바친 감사기도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람의 살을 취하시어 ‘절대 가난’이 되어 오신 주님께서 가난한 처지에 내몰리시어 감사를 드리는 것은 분명 ‘하느님의 역설’이요 사랑의 역설입니다.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강생의 겸손과 주님 수난의 사랑에 매료되어 전 생애에 걸쳐 이 가난의 역설을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낮추고, 비우고, 작아짐으로써', 가난하게 되셨음을 알아차린 그는 바로 그 가난을 통해 사랑의 순례를 떠났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사랑하는 분께 모든 것을 되돌려드리려고 가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가난은 목적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통로일 뿐이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가난해진 것이지, 가난해지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인이 살았던 가난의 역설은 아래로의 발걸음이요 비움의 몸짓이었습니다.


그는 가난의 역설을 통하여 가난하신 주님을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었으며, 따뜻한 애정으로 모든 피조물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낮추고 비우고 작아지는 몸짓'으로 '모든 이의 형제'가 되어야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단순히 과거의 성인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해 복음을 새롭게 살아내라고 초대하는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우리도 그의 발자취를 따라,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서로 형제가 되어 이 시대를 치유하는 빛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단순한 삶을 통해 창조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이 시대에 실천해야 할 프란치스코 정신입니다.


오늘도 성 프란치스코와 더불어 가난과 겸손으로 사랑의 멍에를 지는 복된 날이길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