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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묵주의 기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10월 7일 화요일 (백)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요나 3,1-10; 루카 10,38-42)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셨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10
1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27주 화요일
 
말씀의 경청과 회개로 만나는 자비


제1독서에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지리라."(요나 3,4)는 요나의 경고에 니네베 백성은 왕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회개(שׁוּב)하며 악한 길과 폭행에서 돌아섭니다(3,8).


교부 예로니모 성인은 요나서를 두고 “죄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는 회개로 진정된다”고 언급하며, 니네베의 회개와 하느님의 자비를 강조했습니다.


니네베의 즉각적인 회개와 하느님의 돌이키심은, 우리 죄가 아무리 클지라도 진실하게 회개한다면, 하느님께서 무한한 자비로 언제든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διακονία)로 분주했지만,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주한 마르타에게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1-42) 하고 말씀하십니다.


봉사가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라, 봉사에 앞서 주님과의 깊은 만남, 곧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마르타의 봉사와 마리아의 경청은 대립이 아니라 조화 속에 완성됩니다.”(Origenes, Homiliae in Lucam VII).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마르타의 봉사와 마리아의 경청을 잘 조화시켰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난한 삶을 따르기로 한 뒤, 복음 말씀을 가장 좋은 몫으로 선택하고 끊임없이 묵상했습니다.


그의 회개는 니네베 백성처럼 세속적인 삶에서 하느님께로 돌아선(שׁוּב) 전인적인 결단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나병 환자들을 돌보고, 설교로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활동(διακονία)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는 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권고합니다. 그의 모든 활동의 근원은 마리아처럼 행동에 앞서, 늘 하느님의 뜻을 경청하고 되새겨 복음을 품고, 복음의 향기를 세상에 뿌렸습니다.


우리는 마르타처럼 분주합니다. 디지털 환경과 끝없는 경쟁 속에서 멈추지 못하고, 내 뜻과 인연과 소유를 좇아 쉽게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스마트폰을 보는 데는 시간가는 줄 모르면서도 말씀 경청과 기도를 위해서는 단 5분도 아까워 합니다.


이 시대의 악한 길과 폭행은 물질주의, 이기심,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나며, 이는 니네베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는 악독과 같습니다. 우리는 니네베 백성처럼 삶의 방향을 주님께 돌려 참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르타의 분주함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 침묵 속의 경청이 바로 우리의 활동을 하느님 뜻에 맞는 참된 봉사로 이끄는 힘이 됩니다.


요나와 니네베 사람들,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삶은 우리에게 하느님 말씀의 경청을 요청합니다. 니네베 백성의 회개는 주님 말씀을 따름으로 구원을 이루었고, 마리아의 선택은 말씀의 전인적 경청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혼란한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좋은 몫임을 깨닫고, 회개와 말씀 경청을 통해 하느님을 향한 헌신과 추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될 때, 우리는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는 참 봉사자가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