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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11월 17일 월요일 (백)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1마카 1,10-15.41-43.54-57.62-64; 19,6-9)(루카 18,35-43)


제1독서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렸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10-15.41-43.54-57.62-64
그 무렵 10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
11 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자,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12 이 말이 마음에 들어, 13 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그는 그들에게 이민족들의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14 그리하여 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15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
41 임금은 온 왕국에 칙령을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42 자기 민족만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
이민족들은 모두 임금의 말을 받아들였다.
43 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54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달 열닷샛날,
안티오코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이어서 사람들이 주변의 유다 성읍들에 제단을 세우고,
55 집 대문이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56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태워 버렸다.
57 계약의 책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따르는 이는
누구든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였다.
62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63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64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린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33주 월요일   


눈을 뜨게 하는 믿음


오늘 복음은 예리코 근처에서 한 눈먼 이가 예수님께 자비를 간청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조용히 있게 하려고 했지만, 그는 더욱 크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하였다’(σέσωκέν)는 것은 인간의 전인적인 구원, 곧 내면의 회복과 영혼의 빛남을 뜻합니다. 눈먼 이의 눈이 열리는 사건은 단지 시력의 회복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 열려 하느님의 구원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제1독서는 그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헬레니즘 문화에 굴복하여 이민족들의 풍습을 따르고 계약을 저버리며, 안식일을 더럽혔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유혹 앞에서 ‘보지 않으려’ 선택함으로써 영적으로 눈멀게 되었습니다.


교부들은 이러한 상태를 ‘마음의 눈멀음’이라 부르며, 진리를 보지 못하는 영혼의 병이라고 설명합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그리스도를 부르는 이는 결코 눈먼 채로 남지 않는다. 믿음은 영혼의 눈이다”(루카 복음 주해)라고 합니다. 교부들의 가르침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보지 않으려 하는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영적 눈멀음에서 벗어나 깨어 살았습니다. 그는 나환우를 만나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푸는 체험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그는 하느님을 멀리서 찾는 대신, 고통받는 이와 가난한 이, 상처 입은 피조물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그는 영의 눈을 뜨자 모든 피조물 안에서 창조주의 반영을 봅니다. 그에게 믿음은 단순한 사상이나 감정이 아니라, 주님의 영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의 변화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다시금 집단적인 눈멀음의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극소수 사람들에게 편중된 부, 고용 불안,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로 수십억 명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정치와 경제는 여전히 성장과 이익 중심의 구조에 묶여 있으며, 고통받는 이들과 지구의 신음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카베오 시대의 배교처럼, ‘보지 않으려는’ 선택의 결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찬미받으소서』에서 지적하신 “인간 중심적 눈멀음”은 피조물의 상호 연결성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현대의 영적 병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대답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일 것입니다. 눈을 뜬다는 것은, 가난한 이와 약자, 전쟁의 피해자, 상처 입은 피조물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께서 “주님, 제 마음의 어둠을 비춰주소서”(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의 기도)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달라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참된 빛을 보고, 믿음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온 힘을 다해 주님을 따르는 길 위에 다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