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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11월 12일 수요일 (홍)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지혜 6,1-11; 루카 17,11-19


제1독서
<임금들아, 들어라. 지혜를 배워라.>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6,1-11
1 임금들아, 들어라. 그리고 깨달아라. 세상 끝까지 통치하는 자들아, 배워라.
2 많은 백성을 다스리고 수많은 민족을 자랑하는 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3 너희의 권력은 주님께서 주셨고 통치권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주셨다.
그분께서 너희가 하는 일들을 점검하시고 너희의 계획들을 검열하신다.
4 너희가 그분 나라의 신하들이면서도 올바르게 다스리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5 그분께서는 지체 없이 무서운 모습으로 너희에게 들이닥치실 것이다.
정녕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6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7 만물의 주님께서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시고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어려워하지도 않으신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8 그러나 세력가들은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9 그러니 군주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10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11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32주 수요일  


 
세상을 치유하는 감사


오늘 제1독서는 권력자들과 통치자들에게 그들의 권세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상기하며, 정의롭게 다스리지 못하는 이들은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두 똑같이 생각해주신다”(지혜 6,7)는 말씀은, 권력의 오만이 공동선을 파괴하는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빈부의 심각한 불균형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영적인 위기이기도 합니다.


권력과 부의 오만은 정의와 연대, 평화를 무너뜨립니다. ‘지혜’(חָכְמָה)는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올바르게 행동하게 하는 신적 은총입니다. 통치는 효율성으로가 아니라, 하느님과 일치하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지혜’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 명의 나병환자를 치유하시지만, 그중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이 되돌아와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고 하시며, 육신은 물론 마음의 병까지 치유되었음을 드러내십니다. 감사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오늘날 소비와 불평, 무관심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감사는 가장 혁명적인 행위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3억 명 이상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여러 연구 결과는 감사의 실천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공동체적 유대감을 높인다고 말합니다. 감사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인간을 회복시키는 영적 저항의 행위입니다.


교부들은 오래전부터 ‘감사하지 않음’이 우상숭배의 뿌리임을 통찰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의 선물로 인식하지 못하면 참된 생명을 잃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복음 장면을 해석하며, 돌아오지 않은 아홉 사람은 하느님의 선물만을 받고 그분께 마음을 돌리지 않는 사람을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치유는 영혼이 자기 안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찬미로 바꿀 때 시작됩니다. 감사는 자기중심적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전환되는 회개의 운동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감사의 영성을 삶으로 증언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지존하신 주 하느님께 모든 좋은 것을 돌려드리고, 모든 선에 대해 그분께 감사드립시다.”(비인준칙 17,17) 또한 「피조물의 찬가」에서 그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우주적 형제애의 찬미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는 세상의 나병, 곧 가난과 전쟁, 생태 파괴의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선물을 보았고, 감사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나환자와의 만남에서 감사가 인간의 시선을 치유하는 힘임을 보여줍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8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프란치스칸 영성은 생태 위기의 해독제로서, 생명을 선물로 인식하고 ‘공동의 집’을 돌보는 감사를 제안합니다.


지혜서와 복음은 한 가지 진리를 증언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되게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지배가 아니라 감사로 드러나며, 믿음은 기적이 아니라 감사로 완성됩니다.


오늘날 인류가 전쟁과 불평등, 생태적 붕괴의 위기를 겪는 이때, 말씀은 우리에게 사마리아인처럼 ‘되돌아오라’고 초대합니다.


그분께 받은 은혜를 깨닫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그 순간, 인간은 육신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치유됩니다. 감사는 구원의 열매가 아니라 그 여정의 시작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