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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33주간 화요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11월 18일 (녹)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2마카 6,18-31; 루카 19,1-10


제1독서
<나는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남기려고 합니다.>
▥ 마카베오기 하권의 말씀입니다.6,18-31
그 무렵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19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20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목숨이 아까워도 법에 어긋나는 음식은
맛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용기를 지닌 모든 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21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22 그렇게 하여 엘아자르가 죽음을 면하고,
그들과 맺어 온 오랜 우정을 생각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23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애, 많은 나이에서 오는 위엄, 영예롭게 얻은 백발,
어릴 때부터 보여 온 훌륭한 처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법에 합당하게 고결한 결정을 내린 다음,
자기를 바로 저승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24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5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28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
29 조금 전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자들은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악의를 품었다.
30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31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33주 화요일   
 
존엄을 회복하는 회개의 은총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노인 엘아자르는 권력의 압박 속에도 신앙에 끝까지 충실합니다. 그는 금지된 고기를 먹으라는 명령을 단호히 거절하며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깁니다.”(2마카 6,19) 그는 정의로운 것을 끝까지 붙드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거짓보다 진리를 택했기에 죽음을 맞이합니다.”(성 암브로시오, 의무론 I,41)


엘아자르의 충실함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세속의 권력과 편의가 우상으로 군림하는 시대에도, 그는 진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관장 자캐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보려고 하다’(ζητεῖν)라는 동사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향한 열망을 뜻합니다. 자캐오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감수하면서 나무에 올라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이름을 부르시는 순간, 모든 것이 뒤바뀝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루카 19,9)라는 선언은 도덕적 보상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한 존재의 회복을 뜻합니다. 착취로 살아가던 자캐오는 정의의 주체로 변합니다. 회개는 마음속 감정이 아니라, 관계와 사회 구조를 바꾸는 실제적 행동임을 보여줍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도 자캐오와 같은 회개의 길을 걸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부와 명예를 사랑했지만, 가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모든 것이 헛됨을 깨달았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엘아자르처럼 신앙의 충실함을 끝까지 지켰고,
자캐오처럼 그것을 구체적인 정의와 형제애의 행위로 드러냈습니다. 그의 가난은 물질의 거부가 아니라, 탐욕과 폭력의 세상에 대한 복음적 저항이었습니다.


오늘의 세계 역시 엘아자르의 증언과 자캐오의 회개를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이익이 진리보다 앞서고, 부패가 신뢰를 무너뜨리는 시대입니다. ‘국제투명성기구 202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64%가 정치 엘리트들이 사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기후 위기는 세계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유엔은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전체 환경 피해의 75%를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엘아자르의 윤리적 선택과 자캐오의 사회적 회복은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저항과 희망의 모범이 됩니다.


하느님께 대한 충실함은 오늘날 정직한 삶, 투명한 경제, 창조세계의 보전을 요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하느님을 찬미하라』에서 “생태적 회개는 내적 회개와 분리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시선이 자캐오를 일으키고 엘아자르를 지탱하셨듯, 오늘 우리에게도 그분의 눈길이 머뭅니다. 신앙은 나무 위에서 멀리서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해 내려와 그분을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선 안에서 죄인은 사랑받는 존재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사랑 안에서 정의의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엘아자르의 충실함 안에서 공동체는 진리의 대가를 배우고, 프란치스코의 가난에서 교회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복음의 자유를 배웁니다. 회개란 과거의 후회가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용기입니다. 그리스도께 마음을 열 때, 인간의 삶과 사회, 그리고 온 피조물이 새로워집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