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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1마카 2,15-29; 루카 19,41-44) 제1독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2,15-29 그 무렵 15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이 모데인에서도 제물을 바치게 하려고 그 성읍으로 갔다. 16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그 관리들 편에 가담하였지만 마타티아스와 그 아들들은 한데 뭉쳤다. 17 그러자 임금의 관리들이 마타티아스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성읍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존경을 받는 큰사람이며 아들들과 형제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소. 18 모든 민족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처럼, 당신도 앞장서서 왕명을 따르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 아들들은 임금님의 벗이 될 뿐만 아니라,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부귀를 누릴 것이오.” 19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임금의 왕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20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21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22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23 그가 이 말을 마쳤을 때, 어떤 유다 남자가 나오더니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왕명에 따라 모데인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24 그것을 본 마타티아스는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달려가 제단 위에서 그자를 쳐 죽였다. 25 그때에 그는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도 죽이고 제단도 헐어 버렸다. 26 이렇게 그는 전에 피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지므리에게 한 것처럼, 율법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27 그러고 나서 마타티아스는 그 성읍에서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나를 따라나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28 그리고 그와 그의 아들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성읍에 남겨 둔 채 산으로 달아났다. 29 그때에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33주 목요일 오늘 제1독서에서는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이 조상들의 율법을 버리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며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조상들의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2,21). 저자는 단순히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충실함을 지키는 것이 참된 저항임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길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19,42). 예수님께서는 계약의 완성이시며, 평화를 주시는 분으로서 우리를 찾아오시지만, 도시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 두 본문은 서로를 비추며 해석됩니다. 마카베오 상권의 백성은 제국의 강요에도 계약에 충실하려 하고, 복음의 예루살렘은 그 계약의 성취이신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교부들은 이 “도시”를 단순한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느님을 외면하는 인류의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예수님의 눈물은 당신 백성의 구원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하며, 그분의 눈물은 “그들의 어둠과 불의 모두에 대한 슬픔이었다”고 해석합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인간의 불충실 속에서도 여전히 계약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삶은 바로 이 계약에 대한 충실성과 평화의 구체적인 증언입니다. 그는 회심의 체험을 통해 복음적 가난을 따르며, ‘작은 형제회’를 창설했습니다. 그는 “가난, 작음, 형제애를 실행하도록 초대하는 주님의 거룩한 복음”이 자신이 살아야 할 길임을 선언합니다. 그에게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과 피조물, 인간 상호 간의 조화로운 일치였습니다. 그가 「피조물의 찬가」에서 “형제 태양”, “자매 물”이라 부른 것은,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계약 안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참된 ‘평화’는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주의 화해였습니다. 오늘날 한국과 전 세계의 현실은 이 계약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은 급속한 고령화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심화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미세먼지와 해양 미세플라스틱,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인한 폭염과 집중호우는 매년 수많은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산림 파괴와 자원 불균형, 난민 문제, 전쟁과 경제적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징표 속에서 복음의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평화를 이루는 길을 알고 있느냐?” 오늘 독서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마카베오 상권은 권력의 압력 속에서도 계약에 충실하라고 외치고, 복음은 하느님의 방문을 알아차리라고 촉구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 두 말씀을 자기 삶으로 증언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생태적 위기 속에서도, 하느님의 방문을 알아보고 응답하는 것이 신앙인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우셨던 그 예루살렘의 모습이 오늘의 세상에 반복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시대의 눈물은 심판의 눈물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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