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2일 월요일 <12월 22일>
1사무 1,24-28; 루카 1,46-56
제1독서
<한나가 사무엘의 탄생을 감사드리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24-28
그 무렵 사무엘이 24 젖을 떼자 한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삼 년 된 황소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파와 포도주를 채운 가죽 부대 하나를 싣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25 사람들은 황소를 잡은 뒤 아이를 엘리에게 데리고 갔다.
26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27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6-56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낮은 이들을 들어 올리시고,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시는 하느님
한나는 오랜 불임의 슬픔 속에서 마침내 얻은 아들 사무엘을 젖을 떼자마자 실로 성소로 데려가 봉헌합니다(1사무 1,24-28).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라는 고백은 단순한 종교적 행동이 아니라, 선물로 받은 생명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깊은 신앙의 결단입니다.
교부들은 이 장면을 “감사로 이루어지는 신앙의 성숙”으로 해석하며, 인간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표징으로 보았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생명과 공동선이 언제나 하느님께 속한 것이라는 진리를 배웁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자신의 몸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신비를 노래하며 찬가(Magnificat)를 바칩니다(루카 1,46-56).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습니다.”라는 구절에서 “비천(ταπείνωσις)”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뜻합니다.
교부들은 이 말이 한나의 노래와 직접 연결된다고 설명하며,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모찬가를 “하느님의 정의가 시작되는 자리”라고 해석합니다. 곧, 하느님은 스스로 낮추신 이들을 들어 올리시고, 그들의 삶을 통해 당신의 구원을 드러내십니다.
마리아의 찬가는 추상적 묵상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선언입니다.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라는 말씀은 하느님이 사회 질서의 왜곡을 바로잡으시는 분임을 선포합니다.
교부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해석하며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당신 정의의 기준으로 삼으신다”고 말합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이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으로 정리하며, 사회의 도덕성은 가장 약한 이들의 처지로 판단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 시대의 현실을 돌아보면 성모찬가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상위 부유층의 자산은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빈곤층은 오히려 더 불안정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주거 불안, 저임금 노동, 난민 문제, 고령층 빈곤, 청년 실업 등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인간 존엄성의 위기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마리아의 노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사회적 요청임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약한 이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뜻은 지금 이 시대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실천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한나가 자신의 아들을 봉헌했듯이 우리도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 능력, 공동체를 정의와 연대의 길에 봉헌할 책임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가는 단지 아름다운 기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삶의 방식입니다. 교회는 단순한 자선에 머물지 않고,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구체적 행동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낙후된 이웃과 소외된 이들, 굶주림과 불의에 시달리는 이들 곁에 서는 것이 곧 하느님을 찬양하는 길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드러나도록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모찬가의 현재적 실천입니다.
▶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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