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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연중 제 1주간 목요일 / 송영진 신부 ~

<연중 제1주간 목요일 강론>(2026. 1. 15. 목)(마르 1,40-45)


복음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간절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

1) 만일에 이 이야기가 42절의,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라는 말로 끝났다면,

이 이야기는 단순한 치유 기적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떤 병자가 예수님을 믿고 청해서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라면 해설하기도 편하고, 강론하기도 편합니다.


“그 병자처럼 예수님을 잘 믿고, 예수님께 간청하자.” 라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43절의 “단단히 이르셨다.” 라는 말과 44절의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라는 말씀 때문에, 단순한 치유 이야기가 아닌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병자가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는(45절) 이야기 때문에, 치유 기적과는 별개로 복잡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또 치유 과정에 있는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과 “내가 하고자 하니” 라는 말씀도 이 이야기를 ‘특별한’ 이야기로 만들고 있습니다.

2)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은,

병자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말이긴 한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다는(마르 1,32-34) 소문을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치유의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은 믿고 있었는데, 치유를 간청하면서도 예수님께서 청을 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은,


즉 ‘예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신은 없는 모습입니다.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뒤의 9장에 나오는 ‘어떤 아이의 아버지’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자비’는 믿은 것 같은데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마르 9,22-23).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권능’을 모두 믿는 것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안 믿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뒤의 7장에 나오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여자의 간청을 들어 주기를 거절하셨습니다(마르 7,27). 우상을 숭배하고 있던 그 여자를 올바른 믿음으로 인도하려고, 즉 하느님만 믿는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려고 거절하신 것입니다.>

3) 여기서 ‘깨끗하게 하다.’ 라는 말은, 좁은 뜻으로는 ‘나병의 치유’를 뜻하고, 넓은 뜻으로는 ‘구원’을 뜻합니다. 당시에 나병은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병들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병이었기 때문에, ‘나병의 치유’를 ‘깨끗하게 하다.’로 표현했습니다.



넓은 뜻으로는 모든 죄에서(더러움에서) 벗어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것을 뜻하고, 그래서 ‘구원’을 뜻하는 말이 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병자는 좁은 뜻으로 사용했고, 예수님께서는 넓은 뜻으로 사용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4)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는, “너를 구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일이다. 이제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의 간절함이나 믿음과는 상관없이, 그를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자비’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있는 ‘벳자타 못 가의 병자’ 이야기를 보면, 병자가 당신을 모르는데도, 그래서 당신을 안 믿고 있는데도, 또 당신께 청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그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셔서 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요한 5,5-9). 42절의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라는 말은, “그의 나병이 치유되었다.” 라는 뜻입니다.

5) 예수님께서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라고 ‘엄하게’ 명령하신 것은,

‘몸의 치유’에 대해서만 소문을 퍼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병자는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심각하게 방해했습니다.


‘믿음’이란 ‘순종’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많이 부족한 것이거나 없는 것입니다.
<병자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겠지만, 이해가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순종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이고,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입니다(루카 5,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송영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