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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5주간 월요일 / 기경호 신부 ~

2026년 2월 9일  (녹) 연중 제5주간 월요일

1열왕 8,1-7.9-13; 마르 6,53-56

 

제1독서

<계약 궤를 지성소 안에 들여다 놓았다.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8,1-7.9-13
그 무렵 1 솔로몬은 주님의 계약 궤를 시온, 곧 다윗 성에서 모시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각 가문 대표인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자기 앞에 소집하였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에타님 달, 곧 일곱째 달의 축제 때에
솔로몬 임금 앞으로 모였다.
3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가 도착하자 사제들이 궤를 메었다.
4 그들은 주님의 궤뿐 아니라
만남의 천막과 그 천막 안에 있는 거룩한 기물들도 모두 가지고 올라갔는데,
사제와 레위인들이 그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5 솔로몬 임금과 그 앞에 모여든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함께 궤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잡아 바쳤다.
6 그러고 나서 사제들이 주님의 계약 궤를 제자리에,
곧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 안 커룹들의 날개 아래에 들여다 놓았다.
7 커룹들은 궤가 있는 자리 위에 날개를 펼쳐 궤와 채를 덮었다.
9 궤 안에는 두 개의 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돌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10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11 사제들은 그 구름 때문에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던 것이다.
12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3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53-5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연중 5주 월요일

백성 가운데 머무르시며 치유하시는 하느님

 

오늘 제1독서는 오랜 여정의 결실을 보여줍니다. 계약의 궤가 성전에 들어가고,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웁니다(1열왕 8,10-11). 이 장면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사제들이 궤를 메고 지성소에 안치하자, 백성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한가운데 “머무르시기”로 선택하셨음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머무르심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역사 속에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대목을 해설하며, 하느님께서는 성전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백성이 당신을 찾도록 하려고 그곳에 머무르신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사회적 고립과 관계의 붕괴가 통계로까지 드러나는 시대에, 이 말씀은 신앙이 사상 이전에 ‘현존’에서 시작됨을 일깨워 줍니다.

 

복음에서 마르코는 또 다른 형태의 ‘성전’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갈릴래아의 길과 마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면 사람들은 병자들을 데리고 달려와 그분께 데려옵니다(6,55). 여기서 중요한 행위는 ‘만지다’(ἅπτομαι)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상징이 아니라 실제적인 접촉을 뜻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예수님께서 만져지기를 허락하신 이유를, 병자들의 몸뿐 아니라 그들의 흔들리는 믿음까지 치유하시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신적 고통과 불안, 탈진이 증가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 복음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과 실제로 가까이하라는 초대입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갈릴래아의 길 사이에는 깊은 연속성이 있습니다. 두 본문 모두 ‘가득 채우다’(מלא)라는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구름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예수님의 치유의 힘이 마을들을 가득 채웁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인간 생명이 회복되는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오늘날 빈곤, 이주, 의료 접근의 어려움 같은 구체적 문제들 앞에서, 이 말씀은 교회가 어디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화려한 성전보다 나병 환자와 가난한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세상 전체는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는 인간 존엄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강조하는 가톨릭 사회교리와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수치들이 보여 주듯, 신앙은 닫힌 공간에 머물 수 없고, 반드시 고통의 현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은 공동체에 대한 도전을 제시합니다. 백성은 성전을 구경만 하지 않고, 병자들을 옮기고, 예수님께 다가가며, 변화됩니다.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말처럼 빛을 받은 이는 그 빛을 숨길 수 없습니다. 오늘의 전례는 사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신앙을 요구합니다.

 

약한 이들을 돌보고, 병든 이들을 동반하며, 인간의 존엄이 실제로 존중받는 여백을 만들어 갈 때,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당신 백성 가운데 머무르시며 치유하십니다. 그곳이 참 성전입니다. 나는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