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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5주간 화요일 -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 기경호 신부 ~

2026년 2월 10일 화요일  (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1열왕 8,22-23.27-30; 마르 7,1-13


제1독서
<주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으니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8,22-23.27-30
그 무렵 22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23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7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28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돌아보시어,
오늘 당신 종이 당신 앞에서 드리는 이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29 그리하여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30 또한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1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연중 5주 화요일 
 
언약의 중심과 자유롭게 하는 진리


솔로몬은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한 가지 결정적인 진리를 선포합니다. 아무리 장엄한 건물이라도 하느님을 가둘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간청을 들으시기로 스스로 선택하신다는 사실입니다(1열왕 8,22-23.27-30). 임금의 기도는 돌을 찬미하지 않고 관계를 강조합니다. 주님의 눈이 열려 있고 귀가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기를 청합니다.


여기에는 성경 전통의 핵심인 ‘경청하며 순종하는 태도'가 드러나는데, 이는 수동성이 아니라 살아 있는 언약을 뜻합니다. 오늘날 여러 나라에서 제도적 종교 실천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성경 말씀은 믿음의 정화를 요구합니다. 자족적인 구조에 대한 신뢰를 줄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기도에 더 깊이 뿌리내리라고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 대비를 더욱 분명히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전통을 절대화하면서 하느님의 계명을 소홀히 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꾸짖으십니다. 전통’은 생명의 길이 될 수도 있고 지배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복음의 진리로 이끌지 않는 관습은 하느님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이 된다”고 경고합니다(마태오 복음 주해 XI). 예수님께서는 전통 자체를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의와 사랑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바로잡으신 것입니다.


오늘날 언론에 보도되는 권력 남용 사례들, 특히 약자를 침묵시키려고 규범과 절차가 이용되는 현실은, 모든 관행이 가장 큰 계명,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충실한지 끊임없이 점검되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솔로몬과 예수님을 잇는 중심에 ‘마음’이 있습니다. 성경적 사고에서 마음은 감정의 자리만이 아니라 분별과 결단의 중심입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손의 부정이 아니라 선에서 벗어난 의지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예수님께서는 논쟁의 초점을 외적 행위에서 내적 근원으로 옮기십니다.


규칙과 지표, 평가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 특히 성과 지표와 수치에 대한 집요한 관심 속에서, 말씀은 회개가 단순한 절차 준수가 아니라 마음이 진리에 의해 교육되는 과정임을 상기해 줍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참된 준수는 규칙을 늘리는 데 있지 않고, 변명 없이 복음을 "있는 그대로" 사는 데 있었습니다. 그의 복음적 가난은 권력이나 재물에 안주하는 모든 형태의 종교성에 대한 구체적인 항의였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제도가 인간과 공동선을 섬기려고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직관을 계승합니다(106항 참조).


각종 차별과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세계에서, 하느님 계명에 대한 충실함은 정의와 연대를 향한 실제적인 선택으로 검증됩니다.


오늘의 전례는 성전과 마음, 전통과 자유를 대립시키지 않고, 언약의 진리에 따라 올바로 질서 지웁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실하게 기도하는 이의 소리를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전통을 그 근원으로 되돌려 놓으심으로써 그것을 해방하십니다.


“사랑이 율법에 생명을 불어넣을 때, 율법은 완성됩니다.”(성 그레고리오 대교황). 여러 문화적 긴장과 신뢰의 위기가 교차하는 이 연중 시기에, 말씀은 몸으로 살아내는 신앙을 촉구합니다. 곧, 경청하는 기도와 정화된 전통, 그리고 일상 자체가 하느님을 만나는 참된 자리가 되도록 끊임없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