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 기경호 신부 ~

2026년 2월 21일 토요일 [(자)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이사 58,9ㄷ-14; 루카 5,27ㄴ-32


제1독서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8,9ㄷ-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11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12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13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14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7ㄴ-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27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자비로 회복하는 시간과 식탁


오늘의 말씀은 참된 단식과 예수님의 개인적인 부르심을 매우 구체적으로 연결해 줍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엄격하면서도 빛나는 약속을 전합니다.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를 것이다.”(58,9ㄷ-10) 참 단식을 하고 부르짖는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종교적 외형을 유지한 채 타인을 파괴하는 사회적 관행을 고발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단식은 정의에 따라 사회적 삶의 판을 다시 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1독서는 '안식일'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단순한 규범적 휴식이 아니라 시간이 다시 선물이 되고 사회가 화해를 이루는 표징입니다.


루카 복음은 또 다른 구체적인 장면을 제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라” 하고 세리 레위를 부르십니다. "따른다"(ἀκολουθεῖν)는 것은 단순히 뒤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 전체를 바꾸는 결단을 뜻합니다. 레위가 “일어나”(ἀναστάς) 예수님을 따랐다는 표현은 부활을 가리킬 때도 똑같이 쓰입니다. 회개는 이미 파스카의 시작입니다. 이어지는 식탁의 장면은 바리사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지만, 예수님 사명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5,32).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려고 가까이 가시는 의사와 같습니다.


이사야와 루카는 예배와 삶을 분리하는 그릇된 태도에 대한 비판에서 만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단식하며 목을 굽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형제 앞에서 마음을 굽히지 않는다면”이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날 더욱 절실합니다. 최근 국제 통계에 따르면 수억 명이 극심한 빈곤 속에 살고 있으며, 동시에 식량 낭비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의 단식은 개인적인 수행에 머물 수 없으며, 소비 방식과 경제적 선택, 그리고 구조적 불의 앞에서의 침묵을 성찰하도록 요구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삿대질’은 오늘날 가난한 이들과 이주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담론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의 삶은 복음 말씀을 선명하게 비춥니다.
그는 단식을 육체 경멸이 아니라 마음을 자유롭게 하여, 특히 나병 환자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하는 길로 이해했습니다. 『유언』에서 그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레위가 돈의 식탁을 떠나 친교의 식탁으로 옮겨 가는 사건과 깊이 닮아 있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이러한 복음적 직관을 이어 받아, 모든 인간의 존엄과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강조하며, 정의로운 사회적 휴식 없이는 참된 주일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사야는 구체적인 희망을 던져줍니다.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될 것이다.”(58,11) 이는 마술적인 보상이 아니라 자비에 따라 다시 다듬어진 삶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레위를 부르심으로써, 배제되었던 이들이 이름과 미래를 되찾는 공동체가 시작됩니다. 사회적 피로와 분열,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깊은 이 시대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관계를 치유하는 단식, 식탁으로 이어지는 회개,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앞당기는 참된 휴식입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