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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목요일 강론>(2026. 4. 23. 목) (사도 8,26-40 )(요한 6,44-51)
제1독서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8,26-40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1)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라는 말씀은, 표현으로는 ‘믿음도 은총이다.’ 라는 말씀인데, 뜻으로는 “아버지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나에게 온다.”, 또는 “나를 믿고, 나에게 오는 것이 곧 아버지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의 응답으로 완성됩니다. 응답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은총을 내려 주시는 일을 ‘헛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부르심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응답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부르심과 이끄심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부르심과 이끄심을 깨달을 때 신앙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먼저 믿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아버지의 부르심과 이끄심이 있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창세기의 요셉이 좋은 예입니다. 그가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면서 충실한 신앙인으로 살았던 것이 먼저 있었고, 자신이 겪은 고난들이 하느님의 이끄심이었고 섭리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긴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창세 50,20). 바오로 사도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세례를 받은 일이 먼저 있었고(사도 9,18), 하느님의 부르심과 이끄심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사도행전 8장의 에티오피아 내시의 경우도 믿음과 응답이 먼저였고, 이끄심을 깨달은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깨달음’은 믿고 응답하는 사람에게 내리는 은총입니다.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부르심과 이끄심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거부하는데도 억지로 은총이 내리는 일은 없습니다. 2)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라는 말씀은, ‘만나’를 깎아내리는 말씀이 아니고, “너희 조상들은,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직접 ‘만나’를 내려 주셨는데도, 하느님의 은총은 생각하지 않고 ‘몸의 배부름’만 생각하다가 멸망했다. 지금 너희도 조상들처럼 ‘몸의 배부름’만 찾는다면, 조상들처럼 멸망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라는 말씀은, “나는 새로운 ‘만나’다. 나를 믿고 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먹는다.’ 라는 말은 ‘믿는다.’ 라는 뜻이고,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나의 살’이라는 말씀은 ‘나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라는 말씀은, “내가 줄 빵은 ‘나 자신’이다.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생명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코린 8,6). 요한복음의 머리글에는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3-4).”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3)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주셨음을 믿고, 믿음으로 응답함으로써 그 생명을 얻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이미’ 시작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생활이고, 영원한 생명의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믿음 없는 사람들이나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허한 말장난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말장난 같아서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으려고 하니까 말장난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믿음이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었기 때문에 믿는다는 고백이 아니라, 이해되지는 않지만 생명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먼저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깨닫게 되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해 확신하게 됩니다. 더 깊고 더 강한 믿음의 단계로 가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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