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해 동안 하혈병을 앓던 여인 치유 장면’과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신 장면’입니다.
두 이야기에는 모두 이미 절망의 상태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병을 앓고 있던 여인’은 이 불결한 병 때문에 이미 삶이 포기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을 받겠지.”(9,20)라고 믿었습니다.
‘회당장’은 딸이 죽어 이미 생명이 끝나버린 상태에서,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이다.”(9,18)라고 믿었습니다.
앞의 이야기에서는 ‘하혈병을 앓던 여인의 손’이 예수님의 치유의 권능을 끌어들였으며, 뒤의 이야기에서는 ‘예수님의 손’이 회당장의 딸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이 앞 이야기에만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9,22)라는 말씀이 덧붙여졌습니다.
사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의 믿음’은 언뜻 보기에는 미신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믿음’, 그것은 어찌 보면 주술적이거나 마술적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회당장의 믿음’ 역시 언뜻 보기에는 억지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이미 죽은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면 다시 살아나리라는 믿음’, 그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짓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거나, 예수님이 손을 얹어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상황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 상황을 바꾸실 수 있는 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곧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요,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과 ‘예수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이야기는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 곧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고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줍니다. 그러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에 빠지는 일이 없이, ‘끝까지 믿어라’는 말씀이요, 오로지 예수님께만 희망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으로 이끄시는 그분의 전능한 손길에 우리의 손을 맡겨드려야 할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믿음의 손으로 그분의 옷을 부여잡고 그분의 권능과 자비가 우리들 안에 흘러들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나의 손은 대체,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하느님인가? 자기 자신인가?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마태 9,18)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지문을 새기셨습니다.
선악과를 붙잡았던 제 손을 대신하여, 당신 손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 손을 얹으시어, 저를 축복하소서!
제 안에 새긴 당신 얼을 새롭게 하소서!
제 온몸에 사랑의 전류가 흐르게 하고,
제 손을 잡는 이마다 사랑의 전등이 켜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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