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27주간 목요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10월 9일 (녹)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말라키 3,13-20ㄴ; 루카 11,5-13)


1독서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3-20ㄴ
13 너희는 나에게 무엄한 말을 하였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런데도 너희는
“저희가 당신께 무슨 무례한 말을 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14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15 오히려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16 그때에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서로 말하였다.
주님이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을 존중하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비망록에 쓰였다.
17 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나서는 날에 그들은 나의 소유가 되리라.
부모가 자기들을 섬기는 자식을 아끼듯 나도 그들을 아끼리라.
18 그러면 너희는 다시 의인과 악인을 가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이와 섬기지 않는 자를 가릴 수 있으리라.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27주 목요일 


끈질긴 기도의 힘과 의로운 삶의 열매


예언자 말라키아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말라 3,14)라고 불평하는 백성의 영적 메마름을 단호히 꾸짖습니다. 이러한 불신은 하느님의 정의를 역사 안에서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하느님을 역사 안의 주님으로 신뢰하고 경배하는 마음을 잃은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떠오르리라”(말라 3,20)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태양”은 종말론적 상징으로, 메시아의 도래를 뜻하며 의심과 불신의 어둠을 몰아내는 빛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라고 초대하십니다.


복음에 쓰인 세 동사(αἰτεῖτε, ζητεῖτε, κρούετε)는 모두 현재 진행형으로 되어 있어, 기도란 한 번의 행위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신앙의 표현임을 보여줍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이는 결코 주기를 멈추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닮아 갑니다.”(오리게네스, 루카 복음 강해, Hom. 22)


끊임없는 기도는 하느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녀다운 신뢰를 배우고, 아버지의 선하심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신다”(δώσει)는 것은 취소할 수 없는 은총의 행위를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물질적 해결이 아니라, 모든 선의 근원이신 성령 그분이십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자녀의 신뢰를 삶으로 증거했습니다.
형제회가 분열되고, 건강이 악화되며, 몸이 쇠약해진 상황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며, 선하신 주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되새겼으며, "밤낮으로 기도해야 한다"(2신자편지 21; 인준칙 10,9)고 권고했습니다. 그는 멈춤없이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 안에서 피조물 전체와의 일치를 체험했습니다.


그에게 기도는 은혜를 얻으려는 수단이 아니라, 아버지의 섭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행위였으며, 복음을 사는 근원적인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긍조차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모든 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받는 사랑의 표지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 조급함과 불신이 만연한 세상에서 많은 이가 말라키아 예언서의 불신자들처럼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인내와 신뢰의 힘을 다시 일깨워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계산이 아니라, 아버지를 믿는 자녀의 관계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우리도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에 따라 변화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의의 태양이신 주님께 마음을 열고, 인내와 신뢰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