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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30주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10월 26일 (녹) 다해 연중 제30주일
집회 35,15ㄴ-17.20-22ㄴ; 2티모 4,6-8.16-18; 루카 18,9-14


제1독서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35,15ㄴ-17.20-22ㄴ
15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16 그분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
17 그분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
20 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는 받아들여지고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21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살펴 주실 때까지 그만두지 않으니
22 그분께서 의로운 자들의 송사를 듣고 판결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머뭇거리지 않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4,6-8.16-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다해 연중 30주일


겸손과 회개로 만나는 주님


오늘 복음은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사람”과 “죄를 고백하며 겸손히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을 대조합니다. 복음의 바리사이는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며 다른 이들을 판단하지만,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합니다(18,13). 이 세리는 하느님 앞에서 올바른 관계(δικαιόω)를 회복하여 집으로 돌아갑니다(18,14). 진정한 기도는 겸손에서 비롯됩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과 작음의 영성과 태도는 겸손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을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부르며, 죄인의 자리에서 하느님 자비의 빛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할 때, 오히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닙니다.”(권고 19) 하느님 앞에 자신을 비운 사람만이 주님의 축복과 참된 풍요를 얻는다는 그의 통찰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대부터 40대 직장인 중 절반 이상이 ‘삶의 의미 상실’과 ‘존재의 무가치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교사회학 연구에서는 ‘겸손의 덕목’이 공동체 내 신뢰 회복의 핵심 요소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바리사이처럼 자신을 정당화하고, 타인을 비교하며 우월감을 확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입니다.”(루카 18,14) 오늘의 한국 사회가 겸손과 자기성찰을 잃는다면, 결국 내적 위기와 분열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1독서 집회서는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35,21)고 말합니다. 겸손과 고통 속에서 바쳐지는 기도는 약함이 아니라, 교만한 세상을 무너뜨리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겸손은 세상 속의 작고 상처받은 이들 안에서 주님을 인식하게 하는 영적 열쇠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기 생애를 되돌아보며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자비 덕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불안이 심화하고 경쟁이 격화된 한국의 현실에서, 바오로 사도의 고백과 세리의 기도는 ‘의로움의 기준’을 다시 묻습니다. 그것은 성취가 아니라 겸손이며,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탁하는 믿음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교회의 부패와 세속적 권력의 시대에도 오직 복음에 충실하려 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 권력이나 지식이 아니라, 마음의 단순함과 회개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세리처럼,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겸손 속에 당신의 의로움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경쟁과 비교 속에 지쳐가는 이 시대에, 복음의 겸손과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우리에게 참된 인간 회복의 길을 제시합니다. 의로움은 위대한 행위에서가 아니라, 무릎 꿇는 기도와 회개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그 자리에서 주님의 은총이 새롭게 우리 안에 흐르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