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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30주간 월요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10월 27일 (녹)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 로마 8,12-17; 루카 13,10-17 )


제1독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8,12-17
12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10-17
10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15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16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17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다해 연중 30주 월요일


삶의 한복판에서 굽은 마음과 굳은 생각을 펴고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 성령께서는 삶의 방향을 지속하여 이끌어주시며, 우리 내면을 변화시키고 안에서부터 새롭게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노예의 영”은 두려움을 낳지만, “자녀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합니다.


신앙은 복종이 아니라 자녀다운 친밀한 관계입니다. 예수께서 열여덟 해 동안 허리가 굽은 여인에게 “너는 이제 자유롭다”라고 하시며 영적·사회적 구속에서 벗어나는 온전한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십니다.


“허리가 굽은 여인은 땅만 바라보며 하늘을 잊은 영혼의 상징입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162,6).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다시 곧게 세우시며, 하느님을 향해 시선을 들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안식일을 어기신 것이 아니라, 창조를 본래의 질서로 되돌리심으로써 안식일을 완성하셨습니다”(그레고리오 대교황, 『복음 강론집』 31).


예수님의 행위는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근원적 해방의 표징입니다. 안식일은 금지의 날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교와 회복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과 자비는 대립되지 않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역동 안에서 율법은 완성됩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율법과 생명, 규범과 자유 사이의 긴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통계청(2024) 자료에 따르면, 19세에서 34세 사이의 청년 중 30% 이상이 취업난과 과로, 경쟁으로 인한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살률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며, 특히 노년층에서 그 비율이 두드러집니다.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은 점점 더 주변으로 밀려나고, 많은 이가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인 채 살아갑니다.


오늘의 “허리 굽은 여인”은 바로 이런 사회적 현실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그들의 구속은 물리적이 아니라 구조적입니다. 경제적 불안, 관계의 단절, 디지털 고립, 그리고 삶의 목적 상실이 현대의 영적 굴레가 되고 있습니다.


이때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은 복음의 의미를 새롭게 밝혀 줍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자유란 자율의 추구가 아니라, 사랑으로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그에게 “아빠, 아버지”는 추상적 신학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체험이었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자신을 붙들어 주시고, 상실의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시며, 모든 피조물을 형제로 바라보게 하신 분이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인간 안에 굽은 여인을 곧게 세워주는 여정이었고, 다시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게 하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오늘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주님의 손길에 우리의 굽은 마음과 굳은 생각을 펴시도록 내어 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습관과 이념, 이기심에 굽은 우리의 존재를 곧게 세우는 일이 바로 성령의 역할입니다. 또한 이는 고통받는 이들의 신음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연대를 요구합니다.


성령의 자녀됨은 세상 안에서의 변혁을 뜻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회당에서 그러하셨듯, 무관심이라는 안식일을 깨뜨리고 억눌린 이들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충실은 자비의 실천 없이는 완성될 수 없으며, 하느님의 자녀됨은 형제애의 구체적 표현을 통해서만 드러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