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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대림 1주간 금요일 / 기경호 신부님 ~

2025년 12월 5일 (자) 대림 제1주간 금요일
이사 29,17-24; 마태 9,27-31


제1독서
<그날, 눈먼 이들의 눈도 보게 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9,17-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정녕 이제 조금만 있으면 레바논은 과수원으로 변하고
과수원은 숲으로 여겨지리라.
18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19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20 포악한 자가 없어지고 빈정대는 자가 사라지며
죄지을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모두 잘려 나가겠기 때문이다.
21 이들은 소송 때 남을 지게 만들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며
무죄한 이의 권리를 까닭 없이 왜곡하는 자들이다.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야곱 집안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더 이상 얼굴이 창백해지는 일이 없으리라.
23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에서 내 손의 작품인 자녀들을 보게 될 때
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리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거룩하게 하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리라.
24 그리고 정신이 혼미한 자들은 슬기를 얻고
불평하는 자들은 교훈을 배우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7-31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대림 1주 금요일


희망이 눈과 귀를 여는 때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이루실 결정적인 변화를 선포합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레바논은 과수원으로 변하고, 과수원은 숲으로 여겨지리라”(29,17) 이 말씀은, 척박하고 메마른 현실이 하느님의 개입으로 새롭게 변모할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어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어둠을 벗어나 보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의 내적 귀막힘과 눈멀음을 죄의 결과가 아니라 은총을 갈망하게 하는 조건으로 해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당신께 돌아오도록, 내적 감각을 새롭게 여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또한 “가장 가난한 이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라”고 합니다. 하느님께 의지하는 이들이 참된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반대로 폭력과 조롱으로 타인을 억누르던 이들은 스스로 사라지며, 억울함을 당하던 이들이 회복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사야는 이 모든 변화를 ‘정치적 행운’이나 ‘사회적 흐름’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가 역사 안에서 작동하는 결과로 제시합니다. 이 예언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앙의 지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눈먼 이 둘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치유를 청하는 장면은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하고 물으시며 믿음 자체를 확인하십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외적 놀라움에 흔들리지 않고 인격적 만남 안에서 자라게 하도록 많은 이 앞에서가 아니라 집 안에서 조용히 치유하셨다고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회복시키려고 눈을 여셨습니다. 이 기적은 인간이 하느님을 믿고 응답할 때 ‘영적 시력’을 회복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이 말씀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고령층 빈곤, 취약 노동, 청년 실업, 사회적 고립, 환경 파괴와 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고통이 존재합니다. 특히 노인 빈곤율이 매우 높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이 지속되며, 생태 위기는 이상 기후와 재난으로 점점 더 체감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기술 혁신이 발전해도, 그 혜택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격차는 오히려 커질 수 있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가난한 이들의 우선적 선택”, “노동의 존엄성”, “창조 질서 보전”, “공동선”이라는 기준을 제시하며, 하느님의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도록 모든 신자가 책임 있게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열어 두신 ‘새로운 눈과 귀’를 실제 삶에서 사용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이사야의 약속과 예수님의 치유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열어 세상의 고통을 보게 하시고, 귀를 열어 약자의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마음을 일으켜 그들과 함께 길을 걷게 하십니다.


대림은 그저 오는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된 변화에 협력하는 시간이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나아가도록 초대하는 은총의 때입니다. 예수님께 치유받은 눈먼 이들이 기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열린 눈과 귀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느님께서 지금도 새로운 희망을 준비하고 계심을 증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