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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한 1,1-4; 요한 20,2-8 제1독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 요한 1서의 시작입니다.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12.27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디지털 시대의 증언, 진리, 그리고 책임 요한 사도의 첫째 서간은 매우 구체적인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요한 1,1) 사도는 신앙이 추상적인 사상이나 윤리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들은 사건에 대한 증언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리옹의 성 이레네오는 사도들이 “인간적인 의견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로부터 받은 진리를 전하였다”고 설명합니다(『이단 논박』 III,1,1). 이는 정보가 넘쳐나고 진리가 쉽게 왜곡되는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사랑받는 제자가 빈 무덤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도 같은 맥락이 드러납니다. “그제야 보고 믿었다.”(요한 20,8). 여기서 “보다”는 단순한 시각적 인식이 아니라, 내적인 깨달음을 뜻합니다(ὁράω). 사랑받는 제자는 부활의 과학적 증거를 본 것이 아니라, 정돈된 아마포와 빈 무덤이라는 표징을 통해 믿음에 이르렀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 제자의 믿음은 성경을 완전히 이해하기 이전에 이미 싹텄다”고 설명합니다(『요한 복음 강해』 120,9). 이는 혼란 속에서도 본질을 분별하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보고 믿는’ 태도는 오늘날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최근 국제기구와 윤리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정보 유통, 노동 시장, 사회적 감시, 여론 형성에까지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미지와 텍스트, 데이터 조작이 쉬워진 환경에서 ‘본다’는 것이 더 이상 곧바로 ‘진리를 안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와 세계 곳곳에서 자동화된 허위 정보와 노동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요한 사도의 경고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요한 사도는 선포의 목적이 친교(κοινωνία)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1요한 1,3). 이 친교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윤리적 책임을 포함합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기술이 인간과 공동선을 섬겨야 하며, 결코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최근 교회의 가르침은 기술 발전이 투명성과 정의, 특히 새로운 형태의 배제와 실업으로부터 약한 이들을 보호하려는 도덕적 분별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성 요한 사도이자 복음사가를 기념하는 것은 하나의 소명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1요한 1,2). 오늘 이 증언은 기술을 책임 있게 사용하고, 진리를 수호하며, 복잡한 시대 한가운데서도 “보고 믿는” 신앙의 눈을 지니는 삶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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