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 기경호 신부 ~

2026년 1월 10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1요한 5,14-21; 요한 3,22-30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5,14-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주님이 커져가는 진리와 정의의 삶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과의 신뢰 관계와 인간 사회에서 요구되는 진리의 책임을 깊이 연결하여 성찰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제1독서는 “무엇이든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1요한 5,14)는 확신을 말합니다. 또한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은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한다”(5,18)고 선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느님의 확고한 보호 안에 있음을 뜻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영적 삶의 핵심이 자기 확장이나 자기 정당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가 중심이 되는 전환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는 하느님에 대한 담대한 신뢰는 사회 안에서 권위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도 연결됩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경찰과 사법 제도를 포함한 모든 공적 권위가 공동선을 위하여 봉사하며, 인간 존엄을 존중하는 정의로운 방식으로 행사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불법적인 강제 수사, 과도한 압수수색, 피의사실 공표 문제 등이 계속 제기되고, 경찰 수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아 수사 배제를 요청한 사건 가운데 상당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통계가 국회 자료를 통해 공개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법적 절차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법 제도가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권력의 수단으로 인식될 때, 사회 전체는 깊은 윤리적 불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가 검찰의 표적 수사와 선택적 기소, 편법적인 별건 수사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습니다. 일부 판결문과 법조계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사건의 실체적 진실보다는 조직의 성과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수사의 방향을 좌우하는 경우가 존재하며,


이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의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판사들 또한 정치적·이념적 편향 의혹을 강하게 받게 되면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교회는 국가 권력이 정의와 진리를 떠날 때, 이미 권위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한다고 경고해 왔습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억눌린 이들의 권리를 회복시키고 약자의 존엄을 보호하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요한은 우상 숭배를 경계하고, 참하느님과 거짓을 분별하라고 촉구합니다. 우상은 단지 종교적 형상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권력, 조직의 이익, 성과 지상주의가 진리 위에 놓일 때, 그것 역시 현대적 우상이 됩니다. 사법 권력이 스스로를 절대화하고 오류에 대한 성찰을 거부할 때, 정의는 왜곡되고 시민의 삶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는 세례자 요한의 고백은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하느님의 진리가 커질 때에만 인간의 정의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정의와 진실을 청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사도 요한의 확신은, 불의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거나 체념하지 말라는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가 드러나도록 자신을 낮추는 증언자로 살아가야 하며, 사법 권력이 참된 정의의 도구로 새로워지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커지시고, 인간의 오만이 작아지는 길입니다. 나의 언행으로 주님은 커지고 계실까요?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