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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주간 수요일 / 기경호 신부 ~

2026년 1월 14일 (녹) 연중 제1주간 수요일
1사무 3,1-10.19-20; 마르 1,29-39


제1독서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3,1-10.19-20
그 무렵 1 소년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다.
2 어느 날 엘리는 잠자리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는 이미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여 잘 볼 수가 없었다.
3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4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5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7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8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9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10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20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1주간 수요일 


 
말씀하시고 떠나게 하시는 하느님


사무엘기 상권은 불안한 침묵의 시대를 보여줍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었고 환시도 널리 퍼지지 않았습니다(3,1 참조).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 사무엘에게 주어지는 부르심은 인간의 준비나 성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밤의 고요 속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주도로 시작됩니다.


사무엘이 아직 주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인격적이고 순명적인 관계에 아직 들어서지 못했다는 뜻입니다(3,7).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그를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성 그레고리오 대 교황은 하느님의 말씀은 욕망과 소음이 가라앉은 마음에서 들린다고 설명합니다(복음 강론, I, 9). 부르심은 분주한 활동 한가운데가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집니다.


사무엘의 응답은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음성을 엘리의 음성으로 착각하며, 분별을 위해 중재가 필요했습니다. 노쇠한 사제 엘리는 자신의 한계에도 사무엘에게 응답의 언어를 가르쳐 줍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삶 전체를 여는 순종을 의미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내어맡기는 마음을 찾으신다고 말합니다(설교집, 23, 2). 이렇게 들음이 순명으로 이어질 때, 부르심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향하게 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치유와 선포의 결실이 있었음에도 새벽에 외딴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십니다(마르 1,35). 제자들이 그분을 붙들려 할 때, 예수님께서는 다른 고을로 가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께서 나오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1,38).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예수님의 기도를 사명의 근원으로 해석하며, 가장 거룩한 활동조차 하느님과의 친교에서 흘러나와야 함을 강조합니다(마태오복음 강론, 25,3). 사명은 성공에 머무르지 않고 파견을 향해 나아갑니다. 사랑의 발걸음은 멈출 수 없습니다.


사무엘과 예수님의 이야기는 공통된 구조를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고, 인간은 듣고, 그 들음은 파견으로 이어집니다. 사무엘은 성소 안에 머물기 위해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예언자가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1사무 3,20).


예수님께서도 한 도시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갈릴래아 전역으로 나아가십니다(마르 1,39).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이단 논박, IV, 20, 7).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의 부르심이 특별한 순간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말씀임을 일깨워 줍니다. 오늘날 듣는다는 것은 침묵 속에서 분별하고, 중재를 받아들이며, 자신을 넘어 파견되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머무름이 아니라 응답이며, 응답은 언제나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길로 이어집니다. 기꺼이 듣고 떠날 때마다, 주님의 말씀은 세상 안에서 다시 힘차게 울려 퍼지게 됩니다. 바쁜 일상에서 멈추어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랑으로 응답해야겠습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