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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8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이사 49,8-15; 요한 5,17-30 제1독서 <땅을 다시 일으키려고 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9,8-15 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내어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으니 땅을 다시 일으키고 황폐해진 재산을 다시 나누어 주기 위함이며 9 갇힌 이들에게는 ‘나와라.’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가는 길마다 풀을 뜯고 민둥산마다 그들을 위한 초원이 있으리라. 10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11 나는 나의 모든 산들을 길로 만들고 큰길들은 돋우어 주리라. 12 보라, 이들이 먼 곳에서 온다. 보라, 이들이 북녘과 서녘에서 오며 또 시님족의 땅에서 온다. 13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14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사순 4주 수요일 제1독서는 이사야서의 위로의 책 한가운데로 우리를 이끕니다. 주님께서는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였다. 내가 너를 빚어내어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고 하십니다. 구원을 실현하는 은총(רָצוֹן)의 때에, 확고하고 지속적인 결합을 하신 주님의 자비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난민과 전쟁 피해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는 현실에서, 이 약속은 역사를 붙들고 계시는 하느님의 선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계십니다. 예언자는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절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돌봄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선언입니다. 오늘날 고독과 우울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말씀은 인간의 존엄이 하느님의 기억 안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배반에도 지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부르십니다. 사랑은 기억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누구를, 무엇을 기억하며 살고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후에 물러나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지속하여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단순한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생명을 주십니다(ζωοποιέω). 생명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려는 현대의 흐름 속에서, 생명의 주권이 하느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은 중요한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지속하여 주시는 생명을 나누고 공유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날 때가 온다고 하십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무엇을 들을 것인가의 문제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복ㅁ과 십자가, 타자와 피조물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들은 바를 삶으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는 나병 환자를 껴안고 형제애를 실천하며 복음을 구체화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가 말하는 생태적 회심과 연대의 정신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씀에서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아버지와의 일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교회 역시 독자적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을 섬깁니다.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생명을 주는 활동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는 은총의 때, 곧 카이로스(καιρός)입니다. 오늘의 상처 많은 현실 한가운데서도,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나의 기억의 그릇에는 사랑이 담겨 있는가? 내 삶의 순간은 하느님의 생명이 꿈틀대는 카이로스인가?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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